회사라는 벌집에 대해

이해가 안 가도 좋다. 그저 글이니까

by 구시안

통고와 함께 마지막 스케줄 표까지 짜주니 쉬는 날도 망쳤다.

단호함.

단호하게 썼을 뿐이다.


나의 고요해야만 하는 밤.

생각해 둔 글이 하나 있었는데

메모를 하지 못한 것을 탓해보지만,

이것을 다 쓰니

쓸 수가 없어 그냥 써보기로 한다.


쉬는 날마저 임무를 주는 회사에 침을 뱉으면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

왠지 추해 보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지 말자.

넌 프로다.

I LOVE MY JOB.

I LOVE MY JOB. 을 혼잣말로 내뱉으며

써 내려가는 글이 너무 나답지 않고

우스워서

잠시 담배를 물었다.

왜냐하면 나는 에밀리가 아니니까.


마지막이 편안한 날은 늘 없었다.

던지면 해결하고 해결하면 던져지는 구조.

심플하고도 향기롭지 못한 것이

딱,

회사라는 단어의 이름이다.


조만간 대표와 단판을 지을까를 생각하다가,

그 두 눈동자에 설경이 드리워져 그만둔다.




내가 뭐를 써도

아무리 잘 써도

그들에게는 실망하고 분노할 일이다.

이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는 그러려니 하는 문제다.

사람은 쉽게 채워진다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니까.

차라리 내가 회의 때마다 반대했던

로봇을 얼른 고용하는 것이 날 거 같다.

배터리만 잘 갈아주면 될 것 아닌가.


헌신.

그 기댓값.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그 문제다.


당사자만 아는 그 감정이 느껴지면서도

글은 완벽하게 써서

스케줄 표까지 넣어 주었다.

이왕이면, 아주 차갑게.

회사가 평가한 그대로.

그 기준에 맞춰 아주 정확하게.


머리가 터지려고 한다거나,

코로 숨을 쉬기 힘들어한다든지,

신체나 정신적 반응은 이미 없다.

나의 심장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따져 보자면 벌써 십 이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곳에서 이 만큼 버틴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는

훌륭해지라거나

노력하라는 교육의 현장을 경험했다.

악의적이고

더럽고

일방적인 것이 내 유전자는 잘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것을 이해해주려 하는 사람이나

배려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시대의 반영에 부응해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싫었냐면,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고정된 틀에 갇혀 움직일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말 그대로 고문.

그렇다.

나에게는 고문이었다.

이런 순간도.

왜 내가 이래야 하는지.




꽃이 피니 감탄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나 감각들이 수 놓이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그것이 회사의 물질로 현실화가 되어 매출로 이어지니

대표는 아무래도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열정을 알아서 내뿜고 있는 나를 좋아했다.

그것이 돌이켜 보면 나의 실패였다.

굳이 회사라는 구조에서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마치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여기서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결과가 나오면 회사는 나에게 뭐든 주었다.

원하는 것

내 생각의 반영까지 현실화를 만들어주니 얼마나 좋던지.

근데 단 하나 조건이 붙었다.

결과가 반드시 좋을 것.


실망하고 분노하는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찾는 긴 밤이 너무나도 스스로에게 지독했기 때문에.

회사의 누군가가 "넌 부족해."라고 이야기했다면

그 사람의 면상에 싸대기를 후려 갈려줄 만큼 답변할 말은 많았지만,

회사는 결과의 대비를 생각하고 나를 인정해 주었다.

실수는 한 번 이상이면 흠이 된다.


회사가 그랬다.

이 구조는 늘 그랬다.

모든 것이 평가화 된다.




그 슬픔에 자리를 내어주세요.

차라리 이런 일을 하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내면이 토하는 그 입을 죽사발 내준다.

닥치라고.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는 존재한다고.

나나 그들에게도. 이건 사실이라고.

그것이 억울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그러니 그 입을 닥치라고 조져준다.


슬픔이 생기면 거기 있어도 된다.

행복이 생기면 맘껏 즐겨도 된다.

나는 이 모든 걸 내버려 둔다.


이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이미 뇌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태양을 너무 일찍 삼켜
혀가 타버린 아이였다.


아침은 늘 과숙했고
빛은 과도하게 노랬다.


거리의 돌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신은
취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배웠으나
그것은 칼날처럼

입 안에서 먼저 피를 냈다.


젖은 하늘 아래서

감정은 썩은 과일처럼
스스로 떨어졌고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은 너무 정직해서
내게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대신
몸 안에서 별들이
천천히 멍들었다.


한때의 괴로움은
나를 통과해
다른 색의 나를 남겼다.


지금의 나는
불타지 않는다.
다만
불이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할 뿐.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런 사람이.

나는 그저 현실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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