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념은 절망·착각·가면극이다

by 구시안

얇은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집은 아주 고요했다.
벽에 비친 빛은 둥글고 부드럽게 닳아버린 국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금이 간 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지역을 그려놓은 듯,
이름 모를 강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 안으로 스며든 빛이
벽에 그림을 그리듯 남긴
페인트의 균열을 바라보다가,
모양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그것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잠시 멍하니 시선을 두고 있었다.

다시 잠에 들기로 한다.




희희덕거리는 소리가 집안 곳곳의 틈에서 새어나온다.

벌써 밤인가 싶다.

피식 웃으며 시계를 노려본다.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도 안 되는 잠에 빠져버린 일을

다행으로 여겨버린다.

몸이 가볍다.


물을 한 컵 마시고 베란다로 다가가자,

이미 어둠은 깔려 있고

가로등 아래 몇 명의 사내가

연미복 차림으로 옷깃을 여미고,

살짝 풀린 셔츠를 바람에 맡긴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무슨 파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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