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이 잠을 청하러 갈 때

브런치 100일 동안의 낮과 밤

by 구시안

희망도 목적도 없는

꾸물거림 속에서

혹은

차분하지도 엄숙하지도 않은

몽상 속에서

낮게 중얼거리던 단어들이

밤을 떠돌다 끝내 흩어지거나

남거나를 반복했다.


브런치에 온 지도

어느덧 100일째가 되는 밤.

금세 간다.

뭐든.

금세 가는 것들은

대개 버티고 있는 동안엔
가장 더디게 움직이기도 했다.


그래도

가긴 갔다.

그리고
조용히,

흔적을 남겨봤다.


유치하게

100일이 됐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뭐,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라는

낮과 밤 사이를

일과 글이라는 사이를

여전히 헤매고

있을 뿐이다.


브런치 100일이 되었다는 것.

이것저것 잠시 글을 빠르게

음미하고 나서

100일이라는 숫자는 저리 치워 둔다.


그동안 써온 글들이

차라리 확고한 대화로
오래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그런 심장이 없었다.

누굴 담을 수도 없다.


꾸준하게 계속해서

일을 하며 사는 중간중간

그렇게 다시 찾아 올

낮과 밤.

그 혼자라는 시간에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을

써볼까 한다.

그 뿐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나는 나다. 그걸로 됐다.

‘나’ 답게 쓰면 되는 일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지만,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미친 듯이,
그래도 멈추지 않고
써 왔다.




어두운 밤은 수도원처럼 고요하지만,

나는 수도승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자유로운

날라리를 선호한다.

음악이 흐르는 방 안에서

잠시 몸을 흔들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몽상이

잠을 청하러 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지난 모든 일은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잊힌 바람에 엉켜 얼룩을 남기는,

매일 밤 쓰는 마음이라는 걸레는 여전히 축축하다.

겨울밤에 잘 마를까.

창가에 기대어 널어보지만, 얼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어

창문을 조금 더 닫는다.


그래.
마음은 뜨거운 드라이어 바람으로도 말릴 수 없다.

자국을 남기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나는 이야기의 대척점에 서는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박연진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쳐줄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게 낫다.


특권과 무감각으로 무장한 채
죄책감 없이 살아온 인물은 아니니까.

이 정도면, 됐다.




반수면 상태의 밤.

몸은 잠을 청하고 눈은 또렷해진다.

희미한 시야 가장자리로 먼 불빛이 번진다.

도시의 밤은 평화롭다.

적막한 길가의 가로등 하나가 완전히 감기지 못한 눈처럼 아파 보인다.

근육 없는 가로등에도 교체의 시간이 온 듯하다.

누군가가 갈아주겠지.


입가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담쟁이덩굴 사이로 스민다.

풀어헤친 머리카락 같아

밤의 산책길에 무심히 발길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담쟁이덩굴은 어둠이 만든 자연의 미로처럼,

도시의 벽에 기생하며 무거운 비밀을 감춘다.


시간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무소음 시계를 사겠다 다짐했건만,

집안의 정적을 방해하는 시계는 여전히 똑딱거린다.


베개를 눌러 숨을 고르고 눈을 감는다.

안에서 눈동자를 돌려본다.

커피 탓을 할 순 없다.

원해서 마신거니까.


양을 센다.

한 마리,

두 마리,

셋….


차라리 양의 털을 베어 파묻히는 편이 빠르겠다는 생각.

반쯤 열린 창가에 기대어

어둠이 만든 자연의 미로를 빠져나갈

출구를 찾는다.

일어난 일과 옛 기억이 연극처럼 느껴질 때,

하품이 나오는 이유는 묻지 않기로 한다.


무한대의 재산을 갖고 있는

욕심 많은 시계는 한 낫 우주의 먼지톨인 나에게

공허한 반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못된 것 같으니라고.


창틀이 바람에 달그락거리고,

늦게 끝난 하루는 마침내 하품으로 장식된다.


향수와 적막이 오작교를 놓는 밤.

검은 바닷물 같은 이불이 덮이자,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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