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자기만족 24화

이 정도로 만족한다

괜찮다고 하기까지

by 구시안

이 정도로 만족한다.

나를 덮치는 잠을 떨치며,
개처럼 몸을 흔들어
어둠에 밴 안개의 습기를 털어낸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속삭이듯 내 자신에게 말하며,
밝아오는 창가로 향한다.


삶의 슬픔을 전부 담은 눈으로
마치 신의 존재를 아는 듯
어딘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아침이면
알람시계처럼 찾아와
잠을 깨울
까마귀의 시선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웃어넘기고 싶지만
마음은 몹시 불안하다.
영혼을 찌르는 통증을 느끼는 새벽,
창밖의 냉기가 몸에 먼저 닿고

아침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밝아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신의 비밀로 통하는 창가에
너무 가까이 서 있었던 걸까.

굽잇길을 걷다 멈춰서,
얕은 세상에 오줌을 갈겨대는
술에 취한 청년의 노래를 듣는다.

챙피함을 잃은 그의 노래는
이상하게도
행복하게 들린다.


추한 것을 덜어내고
미덕만 남기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생각한다.


편협한 평론가처럼
노트에 시를 적어 내려가지만
운율은 맞고
아름다움은 남지 않았다.

문장은 그렇게

지나가 버린다.


태양이 떠도
세상은 여전히 공허하다.
이유를 생각해 본다.
내 집에
식물도, 동물도 없어서일까.


빛바랜 파노라마 속
수많은 해석들이
머릿속에서 상영을 마친다.


피로가 몰려오고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징그럽다.


닭살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 연기는
꾸지 않은 꿈의 한 자락 같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만
해주면 좋겠다.


지붕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은
어디론가 사라져
천천히 퍼져갔을 것이다.
햇빛을 받으려 창을 열었지만
겨울의 두터운 이불 속에서
태양은 아직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기다리는 쪽에 남는다.

노동과 휴식이 섞인 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존재할 준비를 마치고
방 안에 흩어진
어젯밤의 그림자들이
누운 채 잠을 청한다.

그것을 쓸어 담아 버릴까 생각하다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기로 한다.


불가능했던 야망이 이루어지거나
가능했던 야망이 사라질 때
엄숙하지 못한 하루는
그렇게 늘 시끄러웠다.


나는 잠에 들거나

가끔은 뜬 눈으로

담배를 물고
자유로운 아침을
빈들거리며 보냈다.


멍이 든 것처럼
파랗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이 순간이
행복에 가까운지 가늠해 보지만

그저 아침이라고 말을 한다.


정체를 잃어가는 꿈 하나가
이제는 괜찮다며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괜찮다고.

이 정도로

만족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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