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그림자 사이의 속삭임
낮은 어둠에게 천천히 물러가고, 하늘은 투명한 회색을 거쳐 연보라색으로 녹는다.
어둠은 스스로를 펼치며, 낮빛과 그림자의 경계 위를 천천히 미끄러진다.
각 방의 문틈 사이, 버려진 의자 위, 접힌 커튼 사이,
조용히 흘러가는 숨결과 발걸음의 여운 사이로
비밀은 스며든다.
밤의 베일은 유리잔 속 물의 가장자리처럼 흔들리며 빛난다.
유리 위에 떠오른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음성처럼,
귀에 닿지 않는 소리처럼,
그러나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방마다 흐른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모든 이가 알아채는 것,
그렇지만 결코 말할 수 없는 것,
바로 비밀의 전달이다.
낮의 잔영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어둠은 낮빛을 녹여 또 다른 연보라로,
어둠보다 더 깊은 보라로,
결국 흰빛의 파동으로 방을 뒤덮는다.
방마다 남겨진 흔적, 남겨진 향, 남겨진 그림자,
그것들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이미 그 사이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발걸음 하나, 낮게 웅얼거림 하나,
그들의 돌아옴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이 스쳐간 자리,
낯선 바람의 속삭임, 문틈 사이로 스며든 그림자,
모두가 비밀을 전달한다.
그 비밀은 헤어짐의 순간에도 이어지고,
헤어진 이들에게 닿지 않은 채
방마다 천천히, 은밀하게 퍼진다.
불빛을 없애고, 소리를 멀리 옮겨라.
유리잔의 물결, 잔 가장자리의 투명한 물방울,
침묵 속에서 황홀하게 빛난다.
빛은 비밀을 품고,
비밀은 침묵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밤은 모든 것을 감싸고,
밤 속에 숨겨진 빛과 그림자는
누구도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날은 어둠으로 물러가고,
방마다 비밀은 흐른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달되고,
알아야 할 순간에 도달하며,
헤어짐 없는 그곳,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모든 비밀은 제자리를 찾는다.
밤이 깊어질수록,
유리잔 위 물의 떨림,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각 방의 남겨진 그림자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비밀을 전달한다.
잠깐 뜸을 들이다가
엉뚱한 행갈이를 했다.
쓰던 글은 불만에 찬 작별 인사처럼
폭풍이 떠나기 시작했다.
창밖의 거리의 소음도 불안스럽게 잦아들었다.
계절이 바뀌는 중인 대기는
밤의 비밀을 들어내며 변신을 시도한다.
차갑고
미지근하고
살짝 드겁기도한 빗줄기 안에서 벌것벗은 자신을 들어낸채
온기를 대기에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이제는 봄이라는 이름으로.
허공에 있는 그 꼬리 전부가 떨어져
세상에 독을 퍼트려 인간을 몸부림 치게 만드는 는
독을 쏘는 전갈의 꼬리모양을 닮았다.
저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구름의 모양이라면
사학한 피조물도 저런 모양을 만들지는 못할 듯 보인다.
용모는 선하고
모두에게 호의적이고 호감형이 되면 좋겠지만
나는 뱀이다.
복잡하 매듭의 무늬를 가진 덜 다채롭고
무늬도 덜 복잡한 껍데기를 매 걔절마다 벗고 있는
뱀이다.
내가 돌아보고 무엇엔가 열망한
도망에서 갑지가 닥친 공포로
기운이 빠져버린 누군가처럼
멈추진 않은 채 뒤를 돌아보니
검은 까마귀 하나가 뒤에서 울고 있었다.
과잉의 향수
밀랍의 향
지독한 꽃들의 냄개가 우러나는 밤.
생각은 혀를 내밀고 있다.
축성된 잿가루를 손에 넣게 되는 밤.
새벽에 채집한 첫 내어쉼.
여긴 악마도 없고
천사도 없다
언제나 있는 속임수도 없다.
지신의 것.
낳지 않은 이름.
반역을 고치고
서로 바꿀 수 있는 이름.
반역과 배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
고치고
정당화하기 위해 행을 바꾼다.
속임수의 미로.
비밀들이 전달되는 밤이 깊어간다.
* 사진: 모리야마 다이도 (森山大道, Daidō Moriyama)
밤이 깊어가면, 언제나 모리야마 다이도의 흑백 속으로 스며든다.
빛바랜 가로등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굵은 필름 알갱이가 담아낸 거리의 소음과 움직임은
내 어린 시절 골목길의 기억과 겹쳐진다.
책을 펼치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과거와 현재, 서정과 날것 사이를 걷는다.
모리야마의 도시와 내 마음이 나란히 숨 쉬는 밤.
노동으로 번 돈을 쓰고 산 책과 사진은
결코 아깝지 않다.
내 비밀의 한 겹, 또 한 겹이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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