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은 언제나 혼자서 먼저 뜨겁다
그래.
고백해버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아무도 네 입술을 벌려놓지 않았는데,
네 안에서만 자라난 그 말들을,
썩은 과일처럼 향이 짙어지기 전에.
고백하고 싶다는 욕구는 언제나 비참하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차라리 통증에 가깝다.
속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가스처럼,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스스로를 중독시키는 기체.
영혼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비밀의 족쇄를 끊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족쇄는 대개 타인이 채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잠가놓은 자물쇠다.
아무도 열어달라 하지 않았는데
열쇠를 흔들며 울부짖는 꼴이라니.
고백은 늘 혼자서 먼저 뜨겁다.
상대가 느끼지 않은 것을,
상대의 세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감정을
네가 먼저 만들어, 네가 먼저 키워,
네가 먼저 장례까지 치른다.
그리고는 말한다.
“이건 진실이야.”
진실.
그 얼마나 오만한 단어인가.
진실은 둘 사이에서 태어나야 하는데
너는 혼자서 임신하고 혼자서 출산한다.
피도, 울음도, 이름도
전부 네 것인데
왜 그 아이를 상대의 품에 안기려 하는가.
고백은 자기애의 마지막 형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까지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렇게 깊이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렇게 망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증명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은 아름답지 않다.
대개는 초라하다.
밤에 혼자 술을 마시다
괜히 휴대폰을 뒤적이며
타이핑했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손가락처럼.
너는 사실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다.
네가 느낀 감정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확인,
네가 흘린 시간과 상상이
완전한 혼잣말이 아니었다는 판결을
원할 뿐이다.
그래서 고백은 언제나 실수투성이다.
표현하는 순간,
이미 너무 과장되어 있고
이미 너무 늦었거나
이미 너무 이르다.
말은 정확하지 못하다.
“좋아한다”는 말 속에는
집착도, 불안도, 외로움도,
어릴 적 버려졌던 기억까지
몰래 섞여 들어간다.
그러니 상대는 당황한다.
그는 네가 내민 꽃을 보지만
사실 그 꽃다발은
너의 공허로 묶여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은가.
그래도 고백해버리고 싶지 않은가.
이 비참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억누르면 더 단단해지고,
외면하면 더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고백은
타인에게 향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을 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겠다.”
“나는 숨지 않겠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마지막 방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자신의 내부를 외부로 뒤집어 보이는 것.
영혼은 때로
조용히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자꾸만 문을 열고 뛰쳐나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한다.
그 이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지라도.
그래.
고백해버려.
대신 기대는 하지 말 것.
구원도, 답도, 같은 온도의 감정도.
고백은 거래가 아니다.
고백은 구조 요청도 아니다.
그저 한 인간이
자기 안의 감정을 더는 감당하지 못해
밖으로 던지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던져진 말은
대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서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고립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이것이
가장 비참한 욕구인지.
비참하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