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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Aug 24. 2018

슈퍼히어로의 등판

쿠바는 역시 잘못이 없었소

민주에게.

너에게 보낼 카톡을 메모장에 쓴다.
왜냐하면 인터넷 연결될 때 지체 없이 이걸 복붙해서 보내기 위해.
1시간에 1쿡 짜리 와이파이 카드가 왜케 소중하냐.

네가 보내준 돈은 들어오지 않고 있어. 주말이 껴서 더 그런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해.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해결하면 되는데, 여기가 쿠바라서 결제 관련 서비스가 다 차단되는 것 같아. '네가 지금 쿠바에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메시지가 나와. 그러니까 한국에 있는 네가 우리 계정에 접속해서 그것을 해주면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 나 바본가?

부탁 1.
** 희상이가 자기 캐나다 계좌에서 짜이 캐나다 계좌로 송금한 500달러 받기 **
캐나다 계좌끼리 송금하는 건 거의 즉시 들어옴. 근데 보낸 사람이 설정한 비번을 받는 사람이 인터넷상으로 입력을 해야 계좌로 들어옴. 그 전까진 가상에 묶이는데, 지금 그 상태.
1. 짜이 지메일 접속 xxxxxx@xxxx.com / zzzzzzzz
2. 희상한테 온 최근 메일 선택
3. 디파짓유어머니 선택하면 화면 넘어감
4. 그 화면에서 다른 건 누르지 말고 select your financial institution에서 TD canada Trust 선택, Deposit 선택 (우린 여기서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가짐)
5. maybe, 비번 입력하는 화면 나오면 'toronto' 입력, 어제 보내준 계좌정보 입력하면 되는 것 같음
6. 만약 카드정보랑 카드비번 입력하라고 하면 0000 0000 0000 0000 / zzzzzzzz, 혹시 모르니까 보안번호는 000, 유효기간은 00월 00년

부탁 2.
** 에어비앤비 숙소 결제하기 **
캐시 아끼고 카드 결제하려고 에어비앤비 숙소 찾음. 근데 결제 단계로 안 넘어가는 거임. 호스트한테 메시지로 물어보니까 VPN 잡아서 할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옴. 근데 그 호스트는 여기 없고 딴 애들은 뭐 잘 모르고 영어로 소통하기 빡셈.
1. 내 에어비앤비 계정 접속 yyyyyy@yyyy.com 비번 이것저것 시도 zzzzz00 / zzzzzz01 / zzzzzz02
2. 최근 메시지에서 Antonio 들어가서 예약 문의 나눈 숙소 (Habitacion independiente en casa colonial) 결제하기
3. 4/14 ~ 4/16로 결제 못하면 미래 날짜로 조정해서 결제해야 할 듯
4. 내 카드 정보 저장돼 있긴 할 텐데, 신한 0000 0000 0000 0000 / 유효 00월 00년 / 보안 000 / 비번 0000
5. 만약 인증번호 받아야 되는데 내가 연락 안 되면 네 카드로 플리즈 ㅠㅠ
6. 만약 명의 달라서 결제 안 된다면 네 계정으로..

미리 고맙습니다. 땡큐. 그라시아스.
둘 중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네 돈도 안 들어온다면 우리는.. 한국인 많은 까사 가서 돈을 빌린다 or 갖고 있는 걸 판다 ㅋㅋㅋㅋㅋㅋ or 최후의 수단인, 신카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ㅠㅠ 일단 내일 밥은 못 먹음..

아 그리고 또. 질문.
나 다쳤어. 선베드에 새끼발가락 갖다 박아서 팅팅 붇고 까매지고 아파. 발가락이 최소 인대 늘어남 또는 최대 뼈에 금감. 짜이가 가져온 파스가 강력해서 최악의 상황은 아님. 병원 가려다 돈 없어서 못 감 ㅋㅋㅋㅋ 이거 한국 가서 치료하면
1.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해야 되나? 실비로 처리하는 게 낫나?
2. 여행자보험으로 하는 게 나으면 여기서 뭔가 증명할 걸 가져가야 되나?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어느 정도 됐는데, 여기는 잘 안돼. 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와이파이가 되는 광장이 어디인지 찾아다닐 거야. 제발 순조롭게 찾아내길 ㅋㅋㅋㅋㅋ


"다 썼다. 나가자"


이 메시지가 유일한 희망이다. 마지막에 'ㅋㅋㅋㅋㅋ'을 썼지만 사실 절박하다. 와이파이 스팟이 어딘지도 모르고 날도 캄캄해졌다. 하지만 물러설 데가 없다. 희미한 와이파이라도 잡히면 한 번에 전송되도록 이미지 없이 텍스트만으로 이뤄진 단일 메시지로 작성했다. 메시지 전송만 성공하면 뒷 일은 민주가 해결해 줄 것이다. 이건 희망이 아니라 확신이다. '민주'니까.






제3의 동행자


방황하던 중2병 시절부터 민주는 내게 나무 같은 존재였다. 매일 밤 집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쏟아내던 슬픔과 치기를 받아준 민주 덕분에 나는 '덜 못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정직하게 FM의 길을 걷는 민주는 내 인생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 여행에도 지원군을 자처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민주에게도 생소한 쿠바에 간다니 제 일처럼 설레 했고, 고작 두 번째 해외여행이라는 점과 내 성향을 잘 알기에 염려했다. 출국 전날 밤까지도 내가 환전을 안 했다는 사실을 알자 신속하게 맞춤형 가이드를 보내왔다.


["위비뱅크" 어플 다운로드 (우리은행)

1. 위비뱅크에서 온라인 환전 신청한 다음에

2. 30분 안에 입금하고

3. 인천공항 출국층 우리은행 가서 너 신분증 내고 캐나다 달러 찾으면 됨

밤 11시 전에 신청해야 돼]


당황하지도 웃지도 타박하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 충실한 민주식 지원이다. 비교 선택지 따위는 없다. 아주 내 취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위비뱅크를 다운로드했다.


[여행자 보험은?

"마이뱅크" 어플 다운 받아서 여행자 보험 가입

만원 돈이니까 꼭 가입행~ 혹 모르니 소매치기 같은 것도 보상되니까~]


'환전을 안 했으니 보험도 당연히 가입 안 했겠지' 하는 심산이었을 텐데, 응, 물론이다. 나는 또 군말 없이 마이뱅크를 다운로드했다.


[이티켓에 발권 클라스 예약 등급 뭐라고 돼있엉?]


To do list 처리가 끝났는지 이번엔 질문이 왔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티켓이 뭐야?]


그렇다. 나는 이티켓이라는 말을 아마도 처음 들어본 것 같다. 그게 되게 기본적인 지식인 줄도 나중에 알았다. 아무리 해외여행 초짜라지만, 첫 번째 해외여행은 대체 어떻게 다녀온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웠겠지만 민주는 그 정도로 동요할 위인이 아니지. e-ticket이라 불리는 전자항공권에 대해 설명하고 샘플 이미지를 보여주며 받은 편지함에서 찾아보라고 차근차근 알려준다. 아마 탑항공이 보낸 메일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이티켓 비슷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지 같은 탑항공이 날 누락시킨 것 같았다. 민주가 '그럴 리 없다'고는 하지만 재촉하지 않는 걸 보니 없어도 그만인가 보다, 하고 침대에 누웠다. 휴가 때문에 며칠을 야근하느라 몸이 천근만근. 짐싸기도 아침으로 미루고 기절하려는데, 새 메일 도착 알림이 왔다?


HYEMIN KIM is sending you the itinerary for your next trip from Seoul to Toronto.


[오 이티켓 왔어. 뭐했어? ㅋㅋㅋ]

[에어캐나다에서 예약번호로 예약내역 메일로 보냈엉~ 이티켓 보여달라고 하면 이거 보여주면 됨]


아까 예약번호랑 메일 주소를 묻더니만 직접 에어캐나다 사이트에 들어가 발송해준 것이다. 민주야 넌 대체 정체가 뭐야? 여행 경험 많은 사람들은 다 이래? 아니면 문제 해결에 특화된 유전자가 따로 있는 거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내 여행인데 이렇게까지.. 너무 고맙잖아.. ... .. 고마운데 너무 피곤해.. 이제 진짜로 기절하려는데 이번엔 페이스타임이 걸려왔다. What Happen?


"메민아 너 앉고 싶은 자리 골라" (민주는 나를 메민이라고 부른다)


...? 잘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노트북 안에 보이는 게 혹시 내가 탈 비행기 좌석 지정 화면인 것이야? 실화야? 와, 이 예측 불가능한 여인은 진짜 정체가 뭘까? 매력이 철철 넘치네. 졸려서 눈알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와중에 웃겨서 좋아서 기뻐서 행복해서 고개가 넘어갔다. 이에 아랑곳 않고 문제 해결 봇은 직진한다. 장거리 비행이라 통로 측 좌석이 좋은데 빈자리가 거의 없다고, 남은 자리 중에 요기랑 죠기가 괜찮아 보이는데 어딜 원하냐고. 어어, '요기'로 할게! 온라인 체크인 마쳤으니 내일 공항 가서는 짐만 부치면 될 거라고, 어여 자라고. 어어, 어여 잘게!

민주 아니었으면 토론토까지 13시간 동안 센터 좌석에 꼼짝없이 낑겨서 나야나 될 뻔했다. 은인이다, 은인. 이런 은인이 없다.


끝이 아니다.



출국 당일, 민주는 남편 태원과 함께 '드라이브 삼아' 인천공항에 배웅을 나왔다. 같이 밥 먹고 출국장 앞에서 두 팔 벌려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이내 전화가 걸려왔다. What Happen?


"메민아 오른쪽에 큰 곰돌이 보이지?"

옆을 보니 정말, 거대한 브라운 인형이 있다.


- 어떻게 알았어? 나한테 CCTV 달아놨어?

"엌ㅋㅋㅋㅋㅋ 지켜보고 있다. 곰돌이 옆에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면 왼쪽에 면세품 인도장 있어"


공항 지리에 빠삭한 두 사람이 면세구역이 들여다 보이는 곳에 지켜 섰다가 전화한 것. 스토커야? 탑승 전에 짜이가 부탁한 면세품 수령 미션을 남겨둔 게 걱정이었나 보다. 엄마라고 부를 뻔. 내가 애도 아니고! 라고는 하지 않고 분부대로 이행했더니 '길찾기가 제일 쉬웠어요'. 누가 보면 인천공항 직원인 줄 알았겠네.


그렇게 나는 무사하지 않으면 무사할 수 없을 만큼 보호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항공기 기종만 보고도 스펙을 줄줄 읊는 태원이 꼭 타보고 싶었던 신식 기종이라더니 정말로 쾌적했다. 첫 장거리 비행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가방에는 두 사람이 챙겨준 여행용 세면도구와 구급약, 과자와 젤리, 볶음고추장이 들어 있었다.


13시간 후,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서 와이파이에 연결하자마자 이런 메시지가 들어왔다.


민주가 보낸 이미지. 좌측 빨간색이 내가 탄 비행기

[캐나다 영토 입성 축하! 5시간만 더 가면 돼 ㅋㅋㅋㅋ]


민주도 민주지만 사실, 잡학박식하고 매 순간 최고 효율성을 계산하는 태원의 역할이 크다. 내가 봤을 때 태원은 그냥... '나무위키' 같은 사람.


"메민아, 너 비행기 타기 전마다 태원이가 체크인 해 둘 거야"


남은 세 번의 비행(토론토→아바나, 아바나→토론토, 토론토→인천)도 온라인 체크인이 열리는 24시간 전에 맞춰 좌석 지정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자기 안고 싶은 자리로 고를 테니 대신 앉아 달라고, 대리만족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안다. 그 말속에 숨긴 배려와 마음 씀씀이를.


"그래, 내가 대신 즐겨줄게!"



토론토에서 아바나로 이동하던 날.

정신 못 차리고 여유 부리다가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정말 한심했고, 내 상황은 정말 긴, 박, 했다. 사실 이 얘기로만 에피소드 한 편 쓸 수 있을 정도. 폐가 터져라 뛰어서 구사일생으로 탑승에 성공했다. 이륙한 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른 숨을 몰아 쉬다가 승무원을 붙잡고 "Water Plz". 단숨에 꿀떡꿀떡 비우고 나서야 좀 정신이 들었다. 그때 옆에 나란히 앉은 하늘이 보였다.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노는 언덕 위에 있을 법한 그런, 파란 하늘이. "와" 외마디 감탄과 함께 알았다.


'태원이 보여주는 하늘이구나'


차가운 물을 마셨는데 뜨거운 게 올라왔다. '존재'가 주는 안도감. 혼자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위기 상황에 봉착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더 그랬다. 극도의 불안 후 만난 감동이라 배로 벅찼다. 숨을 고르고 기내를 쓱 둘러봤는데 내 자리가 제일 상석 같았다. 비행기 규모와 비행 거리, 시간대와 뷰를 감안해 가며 최상의 좌석을 골라준 것이리라. 별 게 일등석이랴.


승무원을 불러 물 한 잔을 더 부탁했다. 이번엔 한 모금씩 천천히, 감동을 마셨다.







다시 민주 소환


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뜻밖에도 계단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혔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메모장에 써 둔 장문의 메시지를 복사, 민주와의 톡방에 붙여넣기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고 1초, 2초, 3초.


"전송됐어!!!!!"

- 진짜? 와이파이 잡혔어? 대박!!!!


살았다. 이제 민주가 봐주기만 하면..!

그 순간 메시지 옆에 붙은 숫자 '1'이 사라졌다. 헉.


"민주가 읽었어!!!"

- 진짜? 벌써? 뭐래뭐래


근데 답이 없다. 와이파이 신호가 또 약해졌나. 폰을 들고 계단과 방을 왔다 갔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민주야 제발.


정확히 7분 후, 이미지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들어왔다.


[짜이 복구 전화번호. 한국 폰번호 뒤에 29로 끝나는 거. 알 수 없는 기계라 메일 로그인이 안 됨. 짜이 핸드폰 번호 알려줘]


예상치 못한 전개다. 짜이가 등록하지 않은 기기로는 로그인하지 못하도록 설정해둬서 메일 계정 접근이 막힌 것이었다. 신속하게 답장을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는데 와이파이가 다시 불안정해졌다. 젠장. 톡 하나 보내는데 한 세월. 가라, 제발, 가라.


그 사이 민주 톡이 수신됐다.


[여기는 쿠바 KOTRA 아바나 무역관. 최후 상황으로 주소 알아둬.

(53-7) 204-1020, 1117, 1165

Avenue, 3ra, e/.76 y 78, Edificio Santa Clara, Oficina 412, Miramar Trade Center, Habana, Cuba

Miramar Trade Center 쿠바 하바나 https://goo.gl/maps/kKMsxqVMD5P2]


쿠바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는 대신 KOTRA가 있다. 민주는 이번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웃지도 타박하지도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뿐.

한참 만에 복구 전화번호를 알리는 톡이 전송됐다.


[메일 들어왔고, 보안질문. What is you favorite quote? to Confirm your identity.]

[블라블라]

[ok]


웬일로 톡이 바로 전송됐다. 민주는 명령을 수행하는 만능 로봇처럼 메시지에 'ㅋ' 하나 없이 뭔가를 척척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민주 파이팅!!!

 

그로부터 2분 후, 다시 이미지 한 장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airbnb 할게 이제]


.................

.....

.........


송금.. 완료.. 화면이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다.


짜이와 머리 맞대고 카톡창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airbnb 할게 이제'라는 메시지가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말을 잃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이미지를 눌렀다. 확대해서 보고 또 보고 짜이를 쳐다봤다. 짜이도 나를 봤다.


"이거.. 완료 화면.. 맞지..?"

- 어.. 나 지금.. 믿을 수 없어....


성공하면 기뻐서 소리를 지를 줄 알았다. 하지만 카톡창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믿기지 않아' '실화 맞지' 하는 말만 반복해서 읊조렸다. 민주는 두 번째 명령인 에어비앤비 예약도 쭉쭉 진행해 성공시키고 곧장 세 번째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신기할 만큼 와이파이가 뻥뻥 뚫려서 메시지 주고받기가 수월해졌다.


[발꾸락 치료는,

현지에서 치료를 받고 치료비 영수증 보관 -> 한국에 와서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

개인 실비보험 이중 청구 가능

캐시 찾게 된다면 꼭 치료받기를. 발꾸락 사진 하나 찍어놓고]


[여기서 치료 안 받고 한국 가서 치료하면?]


[그건 여행자 보험과 관계없음

여행자 보험 약관 메일 포워딩해봐~ 국내 치료는 특약인 거 같애]


[이왕이면 여기서 치료받기!]


[ㅇㅇ 현지에서 치료받을 경우는 치료비 영수증,

골절 같은 거면 진단서 같은 거 줄 테니까 잘 챙겨 놓고

현지병원(영문진단서+영수증) 보험용이라 하면 알아서 발급해 줄 거야]


예약 결제 건을 안토니오가 승인했다는 메일이 왔다. 에어비앤비 결제 미션도 깔끔하게 완료된 것이다. 숙박비를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아도 돼서 원래 가지고 있던 현금도 굳었고, 희상이 송금해준 500CAD도 들어왔다.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무진장 비싼 걸 먹고 펑펑 써대도 다 쓰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만큼의 많은 돈이 생겼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그토록 원하던 게 손에 들렸는데 손가락을 오므려 쥘 수가 없었다. 내내 없는 살림에 나쁜 짓하는 심정으로 쓰던 돈인데. 강금돼 있다가 갑자기 풀어주고 아무 데나 가라고 하면 이런 기분일까? 뭐 이렇게 중간이 없어..?


"이 돈은 허투루 못쓰겠다"

- 응. 절대

짜이 생각도 같았다. 그래도 제대로 된 랑고스타 요리는 한 번 먹어보자는 희망사항도 같았다.


포장 피자는 부자들의 '소박한' 저녁 식사 컨셉으로 탈바꿈되었다


[넌 진짜 짱이야. 짜이가 귀국하면 너 만나고 싶대 ㅋㅋㅋㅋㅋㅋㅋ]

[응!! 만나자!! ㅋㅋㅋㅋ]

명령 수행을 다 마치고 나서야 만능 로봇은 'ㅋ'을 썼다.






최근에 안 사실이 하나 있다.


쿠바에선 며칠에 걸쳐, 이 여행기에선 몇 화에 걸쳐 이어진 '가난 에피소드'의 핵심은 현금 공수 방법에 있었다. ATM 인출 가능한 카드가 캐나다 계좌에 연결된 짜이 카드뿐이라, 그 계좌에 돈이 없어서, 돈을 보내줘도 받을 수 없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애초에 내 카드 2종은 배제됐었다. 체크카드는 쿠바 ATM에서 인출할 수 없음을 확인했고 신용카드는 아예 쓸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ATM에서 현금을 인출한다는 건 카드사로부터 현금 서비스를 받는 것인데, 나에게 현금 서비스란 신용도 하락으로 직결되는 절대악 같은 존재였다. 대출 문제로 신용도 올리기에 무척 공들여야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현금 서비스 =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타지에서 개고생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보할 수 없을 만큼. 고맙게도 짜이는 내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오산이었다.

정말 급해서 '잠깐 빌려 쓰고 돌려주는' 수준은 신용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특정 기간 안에 자주 받거나 늦게 상환해야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한다고.

"이런 쿠바세끼 글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봤는데요" 하면서 지인이 전달해준 신평원의 안내를 보니 빼박 팩트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나의 멍청이 불찰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아는 것에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 여행, 하나보다. 아주 큰 걸 배웠네.


이 얘기를 민주에게 해줬더니,


"나도 여행 가서 현금 서비스 받아 봤어. 너, 카드 있었어?"

- 어.. 있었어..


처음부터 민주한테 현금 서비스와 신용도의 관계를 물었더라면.. 이 여행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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