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며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밤엔 꼭 클럽에 가려고 했다. 재즈의 나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나라, 길거리 할아버지도 살사 스텝을 밟는 나라에서 클럽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앙꼬 없는 찐빵. 소시지 없는 핫도그. 달걀 없는 라면. 맥주 없는 치킨. 공연 보는 재즈클럽 말고, 꽝꽝 대는 스피커 아래 춤추는 '클럽' 말이다.
신기하게도 그 밤엔 비가 내렸고, 우산이 없었고, 택시 타려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고, 그러면 발가락에 감은 반창고가 젖을 게 뻔했다. '브로큰'을 믿지 않던 때였으니 반창고 젖는 게 문제는 아니었으나, 귀찮았다.
귀찮길 천만다행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간호사가 접수처에서 맞이해 주는, 상식적인 병원이다.
"음, 저, 그게.. 왼쪽 새끼발가락이 부러진 것 같은데요.."
- 언제 어디서 다치셨어요?
"아 그게.. 그러니까.. 잠시만요 한국 시간으로 계산하면.. 아, 제가 쿠바 여행을 갔다가.."
- 쿠바요?!
의사샘에게 쿠바에서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들이밀었다.
"골절 맞네"
젠장.
- 저 그냥 선베드에 부딪친 건데.. 정말 부러졌을까요? 별로 아프지도 않아요
"가까이 와 보세요"
그러더니 두 손가락으로 새끼발가락을 꾹.
"앜!!!"
- 아파요?
"네!!!"
- 안 아프다면서요
영혼 없는 무표정의 의사놈...이 아니라 의사샘. 때릴 뻔했다. 안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형식적인 질문 몇 개를 던지고, 엑스레이 촬영 후 골절 진단을 확정하고(하..), 내 발에 반깁스를 둘렀다(하......). 그래도 통깁스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씻을 수는 있으니까. 여행이 나를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킨 모양이다.
"근데 뼈 조각이 워낙 작아서 안 붙을 수도 있어요"
- 네? 안 붙으면 어떡해요?
"어쩔 수 없죠"
아니. 긍정적일 수 없다.
절뚝거리며 건너편 내과에 갔다.
"장염에 걸린 것 같아요"
- 언제부터요? 음식을 잘못 먹었나요?
"아.. 저, 그게.. 제가 쿠바 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는데요.."
- 쿠바요?!
막연히 한국에 오면 낫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더 심해졌다. 물만 먹어도 화장실행, 가만있어도 배가 꿀렁꿀렁. 의사샘은 음식, 물, 바이러스 여러 가능성 다 고려해야 한다며 온갖 약을 처방했다. 약국에서 강력한 지사제를 한 입에 털어 넣었고 붕대에 붙일 반창고도 하나 달라고 했다.
"고단하시겠어요.."
약사샘이 내 초록색 발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네, 좀, 하하..
"새끼발가락에 마가 꼈냐? 왜 자꾸 새끼발가락만 다치는 거야"
도란도란 이야기나 나누며 여행을 마치는 것도 좋겠다고, 밤의 빗소리를 BGM 삼아 뒹굴거렸다. 3년 전 골절된 부위도 새끼발가락 부근이었다. 그땐 오른 발, 이번엔 왼 발. 짜이가 웃퍼하며 연신 '새끼'를 읊조렸다. 욕이었을까?
"우리 진짜 여행기 써야 돼"
- 어 진짜 쓰자 에피소드가 몇 개야 대체
"제목 뭐라고 할까? 난 뭐든 제목부터 정해야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때 문득 '삼시세끼'가 떠올랐다.
못 먹을 뻔했던 '세끼'와 부러진 '새끼' 발가락... 라임 돋네...
"쿠바세끼? 새끼? 흐흫흐ㅎ"
- 흐흫흐흫 좋다 쿠바세끼흐흐흐흫 뭔가 살짝 더 포인트를 넣고 싶은데
이윽고 짜이 입에서 "이런 쿠바세끼"가 나온 순간, 비로소 우리 여행이 완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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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5개월 전의 일이다.
얼마 전, 그 완전에 완전이 더해졌다. 좋은 기회로 아바나 필름 사진집을 내게 된 것. 매 호 1도시 1작가 사진으로 꾸려지는 소규모 독립출판물 시리즈다. '사진집'이 주는 거창한 뉘앙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사진 모음 책이니 사진집이 맞기도 하고. 아무튼 연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
책에 담겼으면 하는 사진을 고르는 동안 여러 번 다시 쿠바에 다녀왔다. 덥고 텁텁한 공기, 씻어도 씻은 것 같지 않은 석회질 수돗물, 도시를 가득 메운 매연, 올드카 경적 소리, 소란하게 지저귀던 참새 소리, '관타나메라'를 외치던 밴드의 합주 소리.
[철컥-]
올드아바나 골목.
배가 불룩한 아기를 향해 셔터를 누른 순간, 짜릿한 손맛이 왔다. 필름 카메라를 찍다 보면 종종 그런 직감이 온다. '오늘 사진은 이 한 장으로 다 했다' 하는. 반대로 '망했다' 하는 직감이 오기도 한다. 필름 감기 레버가 반만 움직이고 마는 건 한 롤을 다 썼다는 신호이자, 방금 찍은 사진이 '잘리는 막 컷'이라는 알림. 수동으로 감는 필름 카메라는 첫 번째 컷이나 마지막 컷이 으레 잘리기 마련이다. 처음에 충분히 감고 시작하면 막 컷이 잘리고, 36컷을 다 살리고 싶어서 아껴 감고 시작하면 첫 컷이 잘린다. 필름과 친해진지 여러 해 흘렀어도 그렇게 꼭 끄트머리 한두 장을 버리고 만다. 결과물은 예상대로였고 나는 불타는 듯 잘려나간 이 사진을 미련 없이 버렸다. 발로 찍어도 아름다운 쿠바에선 이것 말고도 흡족한 사진이 넘쳤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사진 한 장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아무래도, 우리 여행과 닮은 것 같다.
불완전하지만 그것대로 아름다웠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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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 덕분에 강제 칩거 생활이던 나는 계속해서 쿠바에 머물렀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더니, 달리 할 게 없어 글이 술술 써진 격이다. 조각난 뼈는 5주가 지나도록 붙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학병원에 찾아갔다. 우려했던 진단이 내려졌다. '영원히 조각난 채로 살아야 된다'고. 의사샘은, 사는데 별 지장 없을 거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살다가 아파지면 수술하러 오라'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상통이 깨졌다.
"무슨 수술이요?"
- 철심으로 연결해야죠. 그런데 수술할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수술은 정말 어 쩔 수 없 을 때...
지금 발가락이 욱신거리는 건 기분 탓일 게다.
[끝]
이것으로 <이런 쿠바세끼> 연재를 마칩니다.
종종 번외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어설픈 글 읽어주신, 피드백과 응원과 독촉해주신 분들. 사, 사랑합니다.
아참.
그 사이 짜이는 두 번째 쿠바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