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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Oct 31. 2019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브런치와 매거진 B는 왜 '에디터'에 주목하는가 - 브런치토크 전문 上

매거진 《B》는 첫 단행본 '잡스(JOBS)' 시리즈의 첫 직업으로 에디터를 택했다. 책 제목은 『잡스 - 에디터(JOBS - EDITOR)』.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라는 부제를 걸었다. 그리고 책의 뒷날개에 이런 문구를 적었다.


잡스 시리즈와 더불어 카카오 브런치에서는 동일한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디지털 매거진을 발간했습니다.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에 대한 설명. 브런치가 브런치만의 관점으로 『잡스 - 에디터』를 재해석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앞선 글에서 두 브랜드의 콜라보 배경을 설명했다. 아래의 글은 두 브랜드의 콜라보 결과물 중 하나인 '잡스 에디터'에 대한 이야기. 29CM STORE에서 있었던 토크를 글로 옮겼다. 두 브랜드가 만든 두 결과물에 등장하는 에디터들의 이야기이면서 두 결과물을 만들어낸 에디터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손현, 김진호, 김혜민 (c) 29CM


브런치와 매거진 <B>는 왜 '에디터'에 주목하는가 

29CM 브런치토크, 2019. 9. 18.

모더레이터:
김혜민 (카카오브런치 마케터 / 프로젝트 기획)

패널:
손현 (매거진 B 에디터 / 『잡스 - 에디터』, 《Things What You Read》 편집)
김진호 (카카오브런치 기획・제휴 담당 /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편집)




프로젝트의 시작


김혜민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이야기부터 묻겠습니다. 수년간 매 달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만들어온 매거진 B에서 갑자기 단행본을, 게다가 직업을 주제로 한 단행본을 냈어요. 기획 배경이 궁금합니다.


손현

4~5년 전 제가 객원 에디터로 참여할 때부터 당시의 팀장한테 "단행본 낼 거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잡지를 매 달 만들다 보니 여력이 없었던 거죠. 제가 작년 10월에 매거진 B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실무를 할 사람이 입사하게 된 거예요. 저도 마침 단행본 제작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서로 운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잡스 - 에디터』 (좌),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우)


브랜드는 결국 브랜드를 언급하는 사람에게서 완성이 되잖아요. 매거진 B에는 한 호당 적게는 5명부터 많게는 40명까지 인터뷰이가 등장해요. 그런데 그들 한 명 한 명을 다루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커리어도 계속 변하고 당장 4~5년 뒤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들을 직업으로 묶어보고, 일에 대한 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담아보자는 취지에서 직업 시리즈를 만들게 됐습니다.


김혜민

저는 단행본이 기획되는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봤는데요. 매거진 B에서 선정하는 브랜드에 대중이 주목하듯이 잡스에서 소개될 직업도 주목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직업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첫 직업을 에디터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손현

이 질문을 꽤 많이 받았는데, 오히려 큰 부담이 없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에디터를 해야 되지 않을까 암묵적으로 서로 간의 합의가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어요.


우선 매거진 B 자체에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직군이 에디터고, 에디터 중심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에요. 그러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스스로를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어요.


또 다른 차원으로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지금 이 공간을 운영하는 29CM도 에디터를 채용하고 있고, 애플 앱스토어도 에디터를 채용하고 있어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에디터라는 역량을 가진 사람을 다양한 산업군에서 필요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다소 지엽적이지만, 제작하는 측면에서 가장 수월하게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직업을 고민하다 보니 역시 에디터더라고요. 기획에 맞는 사람을 섭외해야 되는데 저희랑 가장 친한 직업, 결과물이 없는 상태에서 제안했을 때에 흔쾌히 협조해줄 직업이 에디터더라고요.


김혜민

올해 브런치는 4년 2개월 동안 유지해왔던 베타 딱지를 뗐습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서비스가 '브런치북'입니다. 브런치팀이 브런치팀의 이름으로 콘텐츠를 직접 기획해서 내놓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브런치팀의 행보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생소했을 수도 있는데요. 이 콘텐츠를 통해서 브런치북을 사용하는 좋은 예시를 보여드리고 싶은 의도가 포함돼 있기도 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제작을 담당한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담되는 프로젝트였을 것 같습니다.


김진호

저는 꽤나 후반에 이 프로젝트에 투입됐는데요. "마음대로 해 보라"는 주문을 받았어요. 카카오의 일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걸 왜 해야 되는지를 오래 고민하고 그 이유를 찾아낸 다음에 일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책임감은 엄청났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브런치북이라는 포맷이 확실했기 때문에 '무에서 유'까지라고는 볼 수 없었고, 이것에 무엇을 담아내느냐만 고민하면 됐어요.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매거진 B의 단행본이 제작 중인 단계였기 때문에 참고할 요소가 많았어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다르게 풀어낼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brunch.co.kr/brunchbook/jobseditors



결과물에 등장하는 에디터들의 이야기


김혜민

왼쪽이 『잡스 - 에디터』에 나온 인터뷰이와 에세이 두 편을 기고한 필자고요. 오른쪽이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의 필자입니다. 인터뷰이와 필자를 고르는 기준이 두 결과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섭외 기준은 뭐였나요?


'잡스 - 에디터' 인터뷰이 및 필자


김진호

'에디터십'이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례, 그리고 확장성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가능하면 현업에 있거나 있었던 분들 위주로 섭외를 진행했어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장강명 작가님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책을 내셨고 다양한 에디터와 일을 해 보셨어요. 그래서 현업 작가로서 다양한 에디터와 일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었고요. 정문정 작가님은 작년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이면서 대학내일 에디터 출신이에요. 에디터로서 경험한 노하우를 가지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셨더라고요. 그걸 녹여내고 싶었어요. 신기주 에스콰이어 전 편집장은, 반평생을 에디터로 살아왔기 때문에 꼭 에디터십의 총론을 맡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 담당자인 장수연 님, 세바시 전 에디터 임채민 님, 스페이스오디티 마케터 정혜윤 님, 마시즘 에디터 김신철 님은 현업에서 에디터십이 적용되고 확장되는 사례를 얘기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이었어요.


손현

김진호 매니저는 원래 잡지 에디터 출신이에요. 근데 저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고 첫 커리어를 엔지니어로 시작했다가 전업한 케이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잡지 에디터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몰랐던 게 처음 기획할 때 장점으로 작용했던 거 같아요. 분야를 거의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 추천을 받고 리스트업을 했어요.


매거진 B는 생각보다 되게 아날로그한 종이 잡지거든요. 여전히 디지털화가 덜 된 편이고. 그래서 B를 기준으로 프린트와 디지털을 구분해 봤어요. 예를 들어 프린트는 단행본 편집자. 디지털은 제러미 랭미드라는, 남성 이커머스 플랫폼 미스터포터의 콘텐츠 디렉터. 그렇게 구분한 후에 에디터 출신인데 현재 다른 일을 하거나 아니면 현업 에디터인 분들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세이 필자로 국내에서 상징적인 에디터 두 분, 황선우 작가와 정문정 작가를 섭외했습니다.


김혜민

정문정 작가님은 양쪽에 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네요.


김진호

단행본과 브런치북 에디션에 연결 지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정문정 작가님이 아닐까 했고요. 같은 글이 양쪽에 조금 다른 형식으로 들어가 있어요. 이미 인쇄 매체를 생각하고 쓰신 글이기 때문에 브런치북에 핏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글의 내용 때문이었어요. 디지털 콘텐츠가 플랫폼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잘 설명돼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베스트셀러가 나오기까지 자신의 노하우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경험담이 자세히 나와 있어요.


김혜민

두 결과물은 형태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포맷 면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단행본은 인터뷰 중심이고, 브런치북 에디션은 에세이로만 꾸려져 있어요. 어떤 포맷을 취할 것인가 선택하는 일은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초반에 해야 될 큰 결정일 텐데요. 각 포맷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알려 주세요.


김진호

브런치에서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에세이 형태를 띠고 있어요. 그래서 브런치팀에서 브런치의 특성을 살려서 브런치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에세이 형식이 가장 적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에세이는 편하게 읽히지만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잖아요. 또 인터뷰 중심의 단행본과는 조금 다르게,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에세이를 택하게 됐습니다.


손현

매거진 B를 보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콘텐츠가 인터뷰 베이스로 진행돼요. 저희가 인터뷰 포맷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어요. 단행본을 제작하면서 스타트업처럼 조직을 꾸렸는데, 말이 스타트업이지 팀원은 편집장과 저밖에 없었거든요. (웃음) 활용할 수 있는 건 해외 통신원들이었어요. 객원 에디터인 해외 통신원들이 해외 인터뷰를 진행하고 서울에서는 제가 진행했죠.


『잡스 - 에디터』 (c) Magazine B


김혜민

전에 브런치북 6회 프로젝트에 참여한 에디터 분들과 미팅 자리가 있었어요. 그분들은 북 에디터잖아요. 그런데 단행본 출판업계가 아닌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 에디터의 일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디지털 핏한 서비스. 이를 테면 브런치일 수도 있고 카카오페이지, 텀블벅 같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김진호 님은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출신이고, JTBC 플러스 디지털 콘텐츠를 담당하셨고, 지금은 카카오에서 일하고 있어요. 같은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이 콘텐츠를 봤을 때, 무얼 얻길 바라셨나요?


김진호

사실 타깃이 에디터는 아니었어요. 에디터십이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에디터로서의 경력이 또 다른 더 넓은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고요.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우연히도 제 경력이 매거진 에디터로 전통적인 지면 에디터의 일을 하다가 그 이후에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에디터로 일하다가 이제는 아예 IT회사로 이직한 케이스예요. 제 경력 자체도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실제로 제가 하는 일도 에디터로서 쌓은 노하우, 네트워크가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에디터들에게 굳이 얘기하자면, 결과물은 다르지만 같은 과정과 같은 노하우로서 일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김혜민

저도 예전에는 에디터라는 직업이 전통적으로 잡지 에디터이거나 북 에디터.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요즘은, 지금까지 얘기한 거처럼 에디터라는 일의 반경이 굉장히 넓잖아요. 손현 님은 이 책을 기획할 때 에디터의 정의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고 본인이 하는 일을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에디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셨나요?


손현

이 화면은 제가 기획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나는 대로 메모했던 구글 문서예요. 우선 사전에서 에디터의 정의를 찾아봤어요. 1번부터 3번까지는 다 사람인데 4번, 5번은 사람이 아니에요. 장치, 프로그램.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브런치도 어떻게 보면 웹 에디터 플랫폼이고요. 생각보다 다양한 정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렇다고 제가 4번, 5번을 글로 실을 순 없잖아요. '코딩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를 인터뷰할까?'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게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잡스 - 에디터』 기획 중 메모 (c) 손현

1번부터 3번까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고민해 보니까 어쨌든 무언가 소스가 있는, 그 무언가를 잘 선별해서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이 지금 시대의 에디터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원천에서 결과물을 잘 끌어내는 사람들.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성취를 이뤄낸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스스로를 리브랜딩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예전에는 에디터가 아니었는데 지금 에디터십을 발휘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김진호 매니저처럼 에디터 출신인데 아예 새로운 쪽으로 빨리 트렌드를 갈아타서 지금 또다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비주얼 이미지 (c) 변연경, 김슬기



결과물을 만들어낸 에디터들의 이야기


김혜민

김진호 님은 브런치북 에디션의 여는 글과 닫는 글을 썼는데요. 닫는 글에 '취향이 곧 자산'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 말이 글 전체의 요약이기도 했고, 공고한 취향으로 유명한 김진호라는 사람을 대신하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취향과 일. 에디터십이라는 관점에서 그 두 가지의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덕업일치 같은 건가요?


김진호

'취향이 곧 자산'은 멋있어 보이려고 썼는데 (웃음) 잘 빠진 문장 같고요. 거창한 이야기부터 하자면, 우리는 이미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이미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고 앞으론 더 많은 일을 대신할 거고. 또 빅데이터 분석만 봐도 현재 트렌드가 뭔지 사람보다 훨씬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어요. 근데 그건 단지 현재 무엇이 잘 팔리고 유행하는지에 대한 데이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렌드를 만들고 선도하기 위해서 저는 반 발짝이나 한 발짝 정도 앞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가 앞서 나가 있는지 몰라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냥 할 뿐이죠. 근데 누군가는 그걸 따라가기 마련이에요. 확고한 취향은 따라 하고 싶기 마련이니까, 그게 트렌드가 되는 거죠. 앞선다는 건 어찌 보면 트렌드를 따르는 자 입장에서의 개념인 거예요. 그래서 취향 자체가 엄청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이 확고하면 기준점이 명확해져요. 그래서 에디터십이 발휘되는 일을 하자면 취향이 확고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확연히 구분이 돼요.


김진호 매니저 (c) 박정길

덕업일치를 말씀하셨는데, 취향이 확고하면 일로 연결될 확률도 높아져요. 예를 들면 음료 덕후 마시즘 님은 음료가 좋아서 음료를 남들보다 심각할 정도로 깊이 팠어요. 그랬더니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그게 어느 수준이 됐냐면, 코카콜라에서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세계 각국의 에디션을 보내줘요. 글을 써달라고 해요. 심지어 이번 브런치북 에디션에 쓴 글을 코카콜라 담당자가 보고 애틀랜타 본사로 초청을 했어요. 박막례 할머니가 구글 본사 가는 것하고 비슷한 맥락이죠. (웃음)


김혜민

두 분은 같은 주제 의식을 가지고 일했지만, 각자의 작업을 한 거잖아요. 이후에 서로의 콘텐츠를 보면서 인상적이었거나 영감을 받은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김진호

일단 저는 두 결과물이 다른 형식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같은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요. 특히 제러미 랭미드 인터뷰 중에서 '에디터의 큐레이션이 필요한 시대'라는 부분이 굉장히 공감됐어요. 그 글 중에서 가장 공감한 대목은 '콘텐츠의 소음 속에서 진짜를 걸러내고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말이에요. 또 '정보를 알리고 마음을 움직이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곧 에디터의 숙명'이라는 부분도 제 생각과 맞닿아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손현

제러미 랭미드 인터뷰는 내부적으로도 반응이 좋았어요. 명언 제조기인 분이라. (웃음)


저는 브런치북 에디션 글 중에서 두 가지가 와 닿았는데, 하나는 김진호 매니저가 '취향이 곧 자산'이라고 한 부분이 저도 와 닿았어요. 요즘 취향이라는 단어를 많이 소비하고 있잖아요. 저조차도 그 단어가 피로해질 때가 있는데, 한편으론 취향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어지지 않나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저 역시 20대 때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잘 알고 살피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을 썼고 시간을 들였어요. 그게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까 즐길 수 있게 된 거 같고요. 김진호 매니저의 글에 '취향이 흐릿하면 잘 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에 동의했고요. 마지막에 '에디터가 일하는 방식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직군에서 에디터십이라는 역량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도 와 닿았어요.


손현 에디터 (c) 29CM

그리고 두 번째 글은 장강명 작가의 글. 본인이 소설가로서 십여 명의 편집자와 협업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편집자, 그리고 현실의 편집자가 얼마나 일에 치이는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해 주셨어요. 제가 지금은 매거진 B 에디터로 일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퍼블리라는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서 일했거든요. 에디터는 저 하난데 스무 명 정도 되는 저자와 협업을 하다 보면 합이 잘 맞는 저자도 있고 아닌 저자도 있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근데 장강명 작가 글을 보고 그동안 협업했던 저자들이 생각나서 약간 반성이 되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늘 많다 보니까 이걸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반추하게 되는 글이었어요.


김혜민

그렇죠. 그 글을 읽고 많은 에디터 분들이 반성하셨다고 들었어요. (웃음) 열 편의 글 중 가장 많이 공유된 글이기도 하고요.


이제 잡스의 다음 행보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어제도 다음 호 준비하느라 야근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다음 호 직업은 뭔가요?


손현

두 번째 세 번째 직업은 셰프와 건축가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전통 요리업계에서의 셰프만 다루진 않을 거예요. 타이틀은 셰프로 가되, 음식을 매개로 하는 사람. 건축가도 진짜 건축가도 물론 있지만 공간을 매개로 하는 사람. 아직 확정된 건 없고요. 기본적으로 매거진 B에서 다룬 브랜드와 연관된 사람들로 초기 라인업을 가겠죠. 이 책에 좀 더 반응이 좋아지면 생뚱맞은 직업을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계속 무직을 다뤄보고 싶다고 편집장한테 어필하고 있습니다. (웃음)


김혜민

잡스 시리즈의 첫 직업이 에디터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독자 입장이 돼서 어서 이 책이 나오길 바랐어요. 에디터라는 직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업무적으로도 강한 호기심이 들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개인적으로 손현 에디터를 인터뷰했어요. 에디터라는 직업이 궁금했고, 같이 일하게 될 동료로서도 궁금했고, 에디터를 인터뷰하게 될 에디터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런 질문을 드렸죠.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셨나요?"


김혜민 마케터 (c) 박정길

당시에 손현 에디터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그럴싸한 답을 해 주시긴 했는데요. (웃음) 이 책을 내놓은 뒤 엄청 성장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질문을 다시 한번 드리고 답을 구하고 싶어요.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더 나은 답을, 구하셨나요?


손현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 단행본을 보면 일곱 팀의 에디터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십에 대한 정의를 내려줘요. 그것들 하나하나가 각자가 속한 산업군과 프로젝트에 따라서 맞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나름 요즘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생각은, 결국 모든 것은 관계와 평판에서 비롯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저의 경우 기획에 적합한 좋은 이야깃거리를 가진 사람을 꾸준히 섭외해야 돼요. 섭외는 승낙 아니면 거절이잖아요. 거절당해도 흔들리지 않을 멘털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멘털을 뒷받침하는 건 좋은 체력이라고 생각하고요. 섭외력, 좋은 체력, 그리고 역시 그 섭외를 가능케하는 좋은 평판.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에디터십이란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결국 모든 일이 사람 간에 벌어지는 거잖아요.


김혜민

정말 마지막으로, 김진호 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일까요?


김진호

저는 막상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고 디지털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면서는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일까' 같은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어요. 마감에 치여서. 이번에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 질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잡스 - 에디터』 단행본의 부제가 그에 대한 답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제가 말하고 싶었던, 확고한 취향이 곧 에디터십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에디터십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문장이 다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잡스 - 에디터』 (c) 29CM


손현

잡스 시리즈는 계속 나올 거예요. 이 시리즈를 통해서 두 가지 질문을 반복적으로 여쭤볼 거 같아요. 하나는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두 번째는 "당신은 그 일을 어떤 생각으로 합니까?" 어떤 규정되지 않은 직업이어도 모두가 일을 하는 세상이잖아요. 그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혜민

저는 대외적으로 마케터라고 소개하고 실제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지만 요즘 업무는 사실상 8할이 에디터의 일과 같아요. 글을 쓰거나 글을 읽는 일이 대부분이고 오늘도 그런 일을 하다 왔는데요. 계속 IT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IT DNA가 꽉 차 있던 저에게 에디터 DNA를 가진 두 분의 등장은 신선했습니다. 배움의 대상이 됐어요. 제가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닫혀 있던 것이 열리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에디터십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집중하고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잡스 - 에디터』 by Magazine B


《잡스 - 에디터: 브런치북 에디션》 by Brunch Team



* 대화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표현은 삭제하거나 편집하였습니다.

* 이 토크 후반부에 나눈 이야기의 일부는 다음 글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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