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가 도래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 경험상 가장 거센 흐름인 것 같다.
2022년 Chat GPT가 열어젖힌 이 거대한 문의 끝이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많은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다.
SF 영화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종류의 미래가 그려지곤 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보다는 '두려움과 공포'에 기반한 미래가 더 자주 회자되곤 했다.
휴머노이드와 관련해 가까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일자리 문제이다.
휴머노이드의 본격적인 등장은 블루칼라 계층에서는 자리를 대체하는 양태로, 화이트 칼라 계층에게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를 장착한 기계시스템(휴머노이드)이 인간을 통제하는 먼 미래 모습도 종종 보이는 영화 속의 미래 전망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특정 부분에 특화된 인공지능, 즉 '약' 인공지능의 기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담론에 있어서는 인간 수준의 범용 인공지능(AGI)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인간보다 100배는 똑똑하다는 초지능 인공지능(ASI)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우리의 현실 기술 수준보다는 미래에 대한 상상의 기술이 훨씬 앞서서 나아가는 형국이다.
사실, 지금껏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상상력에 기인한 바 크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지만, 인간이 상상하면 기술이 그것을 실현시키는 형태로 기술이 발전해 왔다.
영화 등 창작품속에 나온 기술 중 아직 현실에서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은 타임머신만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거의 시도가능하거나 기술적으로는 접근 가능한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도 휴머노이드의 먼 미래 기술 수준을 가정하여 쓰였다.
작품 속 AI의 기술 수준은 최근 손정의 CEO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말한 초지능 인공지능(ASI)을 탑재한 휴머노이드들이 주인공이다. 손 CEO에 의하면 먼 미래 그들과 인간의 지능 수준은 100배 정도 차이라고 한다.
과연 그 정도의 휴머노이드 수준에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존재는 가능하나?라는 게 첫 번째 드는 생각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은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길래 영원히 존재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라는 게 나중에 드는 생각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고, 아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기술에 대해서 오로지 상상만으로 그 결과를 예측할 뿐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인간에 대한 것'이다.
초지능 기반 휴머노이드와 비교하여 인간 존재를 기반으로 인간종의 매혹과 도드라진 특성을 알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그게 긍정적이라면 남은 기간 동안 인간의 특성을 보유한 채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도이다.
2100년 휴머노이드는 최근 손정의 CEO가 말한 초지능 기반의 휴머노이드일 것이다.
지금의 AI보다 점프한 기술 수준이므로 상상이 기반이 된다.
그때쯤 인간은 어떠할까?
물론 지금의 인간과는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경우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휴머노이드의 무조건적인 복종 또는 배려가 아니라면 과연 인간 종이 지구별 지배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동물로부터의 진화의 흔적, 유한한 생명, 불완전성, 감정, 욕망, 흔들리는 존재 등 이 글에서 휴머노이드와 비교하여 서술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볼 때, 매우 비관적이다.
게다가 인간은 스스로 인간 종의 특성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유한 인간 종은 스스로 멸종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진보나 진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AI시대, 인간은 인간 스스로 인간 종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방향은 두 가지다.
본래의 인간 종의 특성을 가진채 인간 종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노력하는 길과
아니면 본래의 인간이 걸었던 길을 포기하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이를 극복해 가는 방법.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는 스스로 멸종해 가는 길과 다름 아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그럴듯한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더 뛰어난 휴머노이드에 의한 인간종 자체의 멸종과
두 번째는 공존하되 인간은 인간 종중에 호모 사피엔스보다 진화한 종으로의 변신이다.
이것은 AI사피엔스쯤으로 대별될 것이고, 인간 본래의 특성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호모사피엔스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종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박하지만 현재 인류의 특성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과 공존하는 길이다.
인간의 삶은 끝없이 인간의 의지를 시험당하는 과정이다.
그 시험의 주체가 신의 주관일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욕망에서 구현된 그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며
자신의 의지를 시험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그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블랙홀 속으로
맹렬히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블랙홀의 끝에서
지금 우리 인간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과 주체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장자가 잠이 들어 자신이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는 꿈(호접지몽)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내가 장자로서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란 존재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는 중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2100년에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만약 존재한다면)은 그들이 처한 조건에 따라
의지를 시험당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지금의 인간종과 그때의 인간종은, 같지만 같지 않은
장자와 나비의 관계일 것이다. 끝.
PS. 제 첫 브런치북 연재 기간 함께해서 감사했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