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길목, 연애의 무게와 균형
가끔은 아무 계획도 없는 순간이 가장 오래 남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늘 예측 불가능한 여백 속에 숨어 있고, 가을의 사진 한 장은 그런 찰나를 조용히 붙잡아 두었다.
우리는 십여 년째 장거리 커플이다. 일요일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 그는 갑자기 차를 돌려 공원을 스쳐 지나갔다.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이 흐드러진 11월의 가을에 홀려 우리는 차를 멈추었다. "산책할까?"라는 내 말에 그는 "산책!"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내릴까 말까 장난스레 망설이다 활짝 웃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인간 리트리버다.
공원 한편에서 낡은 그네와 시소를 발견했다.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자꾸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가볍게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보고, 체격 차이가 만든 불균형의 유쾌함 속에서 시소를 탔다. 내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면, 그는 슬쩍 몸을 뒤로 빼거나 중심을 이동하며 수평을 맞추려 애썼다. 내가 버둥거리면 그는 재밌다는 듯 장난을 걸었고,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계속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균형’이라는 말을 머리가 아닌 정직한 몸의 감각으로 배웠다.
오래된 공원에서 머물며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가장 단순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누가 더 높이 올라갈까’, ‘누가 더 엉덩방아를 찧을까.’ 유치한 장난 속에서 도리어 깊은 평온함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계산 없이 서로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진솔한 얼굴이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런 사소한 틈들이 우리의 신뢰를 단단하게 메워왔다. 그의 다정한 표정과 나의 꾸밈없는 웃음, 그리고 둘 사이에 생겨난 조용한 균형. 그것은 어떤 성취나 성과가 아니라, 내면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즐거웠다.
요즘 중고 거래 커뮤니티에서 ‘경찰과 도둑’, 이른바 <'경도' 하실 분 모집합니다>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본다.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가 그리워서가 아닐까. 그 아이의 순수함을 0.1%라도 지켜주려 애쓰는 그 찰나의 진심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연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서른 초반에서 중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의 가을을 지나며, 시소 끝에 앉아 땅을 지그시 딛던 그 순간처럼 나는 이 가벼운 안정감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서른이라고 해서 매 순간 삶이 무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 짧은 유희 속에서 다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