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가 아닌 호흡으로서의 기록
하루를 지나며 만나는 작은 장면 하나가 나의 글쓰기를 이끈다. 나는 정해진 시간이나 엄격한 규칙보다, 마음이 스스로 '일시 정지'를 누르는 찰나를 포착해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불규칙한 리듬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럽다.
사실 글쓰기를 '루틴'으로 만든다는 선언 자체가 내게는 여전히 조금 어색하다. 어딘가에 투영되어 비친 내 표정이 유독 낯설게 느껴질 때, 혹은 걷다가 내면의 목소리가 조용히 고개를 들 때 슬그머니 그 순간의 감각을 새겨둔다.
어떤 날은 긴 문장이 되기도 하지만, 사진 한 장이나 단어 하나로 매듭지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흔적이 모여 그날의 결을 완성한다. 꾸준함이란 글의 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이런 파편적인 기록들이 쌓이며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소음 속에서 설령 나의 리듬을 놓치더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올 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체 없는 소음과 선을 넘는 타인의 시선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정체 모를 불안에 잠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록하는 그 짧은 찰나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영역임을 안다. 기록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얇지만 단단한 막이 되어주었고,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아야 할 고유의 리듬을 지켜주었다.
하루가 저물 때쯤 모아둔 조각들을 천천히 읽어본다. 흩어져 있던 언어들은 저마다의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소란했던 감정들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며 중심을 잡아준다. 글을 잘 쓰려고 애쓰는 과정이라기보다, 흐트러진 하루를 정성껏 개어두는 일에 가깝다.
앞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압박하는 숙제 같은 루틴 대신, 나의 마음과 계절을 보살피는 기록 방식을 택하고 싶다. 호흡을 고르게 하는 글, 하루의 빈틈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글. 그렇게 나답게 쓰는 행위가 지치지 않고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문장은 마음이 멈춰 선 지점에서, 정직한 속도로 천천히 쓰일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정직한 속도로 써 내려가는 문장들. 나는 이 다정한 방식으로 나를 돌보며 계속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