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문장이 쌓일 때 [13] 부서진 밤의 궤적

불면과 핑크노이즈

by 유조
잠은 마음의 리듬을 정돈해 주는 시간인데, 요즘 그 리듬이 자꾸 끊겨버린다. 깊게 자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밤은 더 얕아진다. 나의 의지가 도리어 잠을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내 불면의 이유와 작은 시도를 기록해 본다.


요즘의 밤은 유난히 짧다. 두 시간이 겨우 지나면 눈이 떠지고, 이어져야 할 연속적인 밤의 궤적이 잘게 부서진다. 밤의 깊이는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텐데, 유독 나에게만 닫힌 문처럼 느껴진다. 문 너머의 고요를 아는 사람들의 숨소리만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새벽이다.


밤에 다 채우지 못한 휴식의 할당량을 낮의 짧은 틈새에서 겨우 채집한다. 어딘가에 기대 잠깐 눈을 붙이는 순간, 등받이의 온기에 몸이 가라앉으며 아주 조금씩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쪽잠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잠이라기보다, 무너지는 몸을 잠시 고쳐 세우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온전한 시간을 푹 자고 깨어나는 단순한 안도감을 느껴본 지 오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조용히 시도해 보고 있다. 약난방과 전기장판으로 최적의 온도를 맞추고, 수면 안대로 모든 빛을 차단한다. 그런데도 사소한 생활 소음의 파동은 잠이라는 내면의 경계를 속수무책으로 허물어뜨린다. 잠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이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거저 주어졌던 본능을, 이제는 장비를 갖추고 연습해야 하는 과업으로 마주하고 있다.


오늘, 무심히 검색창을 열었다가 핑크 노이즈라는 단어를 만났다. 고주파가 걸러진, 사람의 귀가 가장 편안해하는 공명 주파수라고 했다. 잠깐 들어보기만 했는데도 파도 소리나 빗소리를 닮은 그 단조로운 공명이, 날카롭게 서 있던 생각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준다. 밤의 날카로운 감각이 조금은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밤은 핑크 노이즈를 틀어놓고 잠들어보려 한다. 흩어져 있던 잠이 조용히 한 줄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잠은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찾아오는 축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배워야 하는 기술 같다. 나는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지만, 내일 아침에는 조금 더 가벼운 얼굴로 눈을 뜨고 싶다. 잠든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둘러싼 모든 긴장을 기꺼이 방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큰 변화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 한 번의 온전한 밤만 찾아와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조용한 바람이 나를 다시 고요가 시작되는 장소로 안내해 주기를. 깊이 잠들고 싶다. 단 한 번도 깨지 않는 온전한 밤을 지나, 당신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아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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