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희망-씨앗 뿌리기
300평의 땅은 누군가에겐 넓고 누군가에겐 좁은 면적일 테지만 나에게만큼은 광대한 평원이었다. 무엇을 심고 가꿔야 할지 알 길이 없는 초보농부는 막막함 따윈 없었다. 그저 가슴이 설레었다.
"그래. 허브를 심자! 명색이 꽃농분데 캐모마일 정도는 심어 줘야지."
꽃을 보고 수확해 차도 만들고 지인들에게도 선물할 상상을 하자니 벌써부터 행복했다.
캐모마일 씨앗 봉투에는 5000 립이라는 씨앗이 들어있었다. 어찌나 작은 씨앗이던지 들숨 날숨을 조절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날아가 사라질 것만 같은 그 미세한 씨앗이 손끝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집어도 씨앗이 잡힌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씨앗을 하나씩 하나씩 줄을 맞춰 심었다. 이땐 재식 간격이 뭔지 씨앗의 종류가 광발아인지 암발아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 땅에 심어 주기만 하면 발아가 되고 싹이 나 꽃이 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우습게도 초보농부인 나의 첫 캐모마일 농사는 대풍년이었다.. 고 착각했다.
줄을 맞춰 그 작디작은 씨앗을 하나씩 심어주었던 나의 수고가 허투루 돌아가지 않고 모두 발아를 했는지 빽빽이 싹이 나 밭 한 고랑을 가득 채웠다. 지나가다 힐끔 보시고 옆 농부님께서 물으신다.
"새댁. 당근 심었어?"
(영낙없이 이파리가 당근과 비슷했다.)
이때부터 생노가다가 펼쳐졌으니.. 저 많은 싹들을 다 솎아주어야 했다. 캐모마일은 미세씨앗이어서 모종판에 파종을 한 후 이식을 해줬어야 했고 씨앗 한 알에서 엄청 넓게 자라니 재식 간격 또한 넓게 간격을 두고 심어줘야 했던 것이다. 그해가을 난 엄청난 캐모마일의 꽃에서 풍기는 달콤한 과일향을 뒤로한 채 모조리 뽑아 주었어야 했다. 성장세가 워낙 좋아 주변의 다른 꽃들의 성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어디선가 캐모마일 꽃은 피어난다.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이렇게 자연발아를 잘하는 식물들 특징은 한해살이 식물임에도 가을에 스스로 씨앗이 떨어져 모종 상태로 혹독한 겨울을 잘 이겨낸다는 거였다. 민들레처럼 땅에 최대한 가깝게 납작 엎드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듯싶었다. 그렇게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은 따뜻하게 실내에서 모종 상태로 키워져 옮겨 심은 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꽃을 보여주며 건강하게 자랐다. 마치 지금의 내 상황을 견뎌내라고 응원해 주는 메시지 같았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 이른 봄부터 더 많은 꽃과 향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너도 이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라는 꽃들의 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