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면제-잡초
몇 해를 돌보지 않았던 텃밭으로 발을 돌린 건 순전히 몸이 고단하길 바라서였다. 처음엔 잠들기 위해 힘을 써야 할 곳이 필요했고 운동을 시작하자니 내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노동을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일이 커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이 작은 시작이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거라고 예상조차 못했었다. 그저 심심할 때, 우울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갈 수 있는 곳.. 그런 아지트가 하나 있었으면 싶었던 곳이 이 텃밭이었고 딱히 친한 친구도 갈 곳도 하나 없던 내게 그런 곳이 되어 줄 수 있는 이곳이 마냥 고맙고 좋았다.
농사라고는 지어본 적도 구경해 본 적도 없던 말 그대로 생초짜인 내가 꽃농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처음 해준 일은 잡초제거였다.
누군가 농사의 반은 잡초 제거라는 말을 했던가? 그렇다.. 농사의 시작과 끝은 잡초와의 싸움이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고 뒤돌아 서면 빼꼼히 돋아나있는 풀들을 보자니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을 풀만 뽑고 또 뽑았다.
언젠가부터 숨이 쉬어지지 않아 찾아간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1년쯤 되었을 때부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수면장애가 있어 먹게 된 수면제를 단숨에 끊게 해 준 게 바로 저 잡초였으니 심히 고마울 따름이었다ㅎ (나는 아직도 수면제는 먹지 않고 있다.) 밤마다 잡생각들로 뒤척이는 날 잠들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몸을 고단하게 만들려 벌인 이 일은 예상 적중이었다.
그렇게 잡초와 싸우다 싸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으니.. 싸움의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잡초와는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타협을 해야 하는 상대였다.
그래. 잡초 매트를 깔자!!
매트를 깔아줬다고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트 위로 비집고 기어이 햇빛을 찾아 올라오는 게 잡초였다. 그런 녀석의 생명력과 집념에 짜증이 나다가도 왜 하필 넌 잡초로 태어나서.. 싶어 마음이 쓰이곤 했으나.. 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어마무시하게 자라난 풀밭을 마주하게 되니 이런 감성 따윈 사치다. 감성에 젖어 혹은 기세에 눌려 까딱 풀 뽑기를 게을리하면 옵션으로 뱀이 찾아온다.
간혹 예쁜 풀꽃이 있어 뽑지 않고 감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텃밭 옆 농부님들의 소리가 들린다.
"새댁! 풀씨 날려! 잡초 좀 뽑아!!"
나에겐 꽃이었으나 그들에겐 풀씨만 날리는 잡초일 뿐이다. 그 모습이 예뻐도 풀은 풀이다.
생각보다 수면제는 내성이 강했다. 반알로 시작해 두 알까지 늘려도 잠을 쉽게 자지 못했다. 용량을 더 늘리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고로 어느 날부터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었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취해야 잠이 드는 악순환.. 그런 내가 이런 악순환을 한방에 이겨냈다. 풀을 뽑고 녹초가 돼서야 집에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갔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살아 있구나.. 살고 있구나.."
그래. 나는 살고 싶다. 잉여인간이 아닌 풀밭에 잡초라도 제거해서 남의 밭에 풀씨라도 날리지 않게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