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확률?
발렌타인데이.
여기는 삼청동.
나의 명상스튜디오.
각자의 이유로 글을 좋아하는 9명이 모였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려는 웹툰 작가,
축가로 4행시를 쓰는, 인스타가 꽤 인기 있는 분.
그리고 나.
*
2년 전, 나는 실리콘밸리에 있었다.
원했던 테크회사,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었고,
승진이 눈앞이었다.
"나미, 좋은 소식이 있어."
보스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주말까지 프레젠테이션 하나만 준비해.
형식적인 거야.
내기만 하면 승진 확정. 축하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 떠날 시간이구나.'
우울해서가 아니었다.
일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받았을 것이다.
축하받고, 더 바빠지고, 더 채우고.
모른 척하며 이어갔을 인생.
지금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였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한국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겠다.
나의 뿌리, 한국을 알고 싶다.
그 후는? 모르겠다.
*
나는 항상 뭐든 잘 해내는 편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좋겠다, 넌 뭐든 하면 먹고 살 사람이야."
그런데 사실 나에겐 콤플렉스가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
그렇게 15년.
8개의 회사에서 11개의 직책을 맡았다.
일을 잘해서 승진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어디에서든 결국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제가 해볼게요" 하고 나서는 일.
보스가 헤매고 있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일.
누군가의 눈이 흔들릴 때,
"너 이거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일.
회의실에서든,
커피 한잔 친구와의 만남이든.
직책은 열 번 바뀌었지만,
그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
그리하여, 돌고 돌아, 삼청동.
나는 이곳에 명상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글쓰기 모임이 열린다.
이 9명은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타이밍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어떤 이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어떤 이는 멈춰 있던 펜을 다시 들려고.
어떤 이는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이것은 우연일까.
발렌타인데이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하필 (아마도) 싱글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확률은.
웨이블로 명상스튜디오.
가슴 헛헛한 사람들이 찾아와,
평온을 찾고,
나를 찾아가고,
다시 뛰어들기 위해 숨을 고르는 곳.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누군가의 새로운 첫 줄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