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의 칠공주

단편소설13

by 최지윤

일신아파트 전각은 노인정과는 다른 장소였다. 노인정이 정말 기운 빠진 사람들이 머무는 곳 이라면, 전각은 아직 ‘밖으로 나올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차지한 자리였다. 오후 한두 시쯤이면 하나둘 모여들어 화투를 치고, 병원 이야기와 자식 소식을 나누다가 해가 기울 무렵 흩어졌다. 특별한 약속은 없었고, 그래도 모이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었다. 그중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도 리더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결정은 늘 그 사람의 말로 정리되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뭐.”

그 한마디면 자리가 정해지고 순서가 정해졌다.

어느 날 그 언니가 나를 데려왔다. 그렇게 여섯이 되었고, 제일 늦게 들어온 나는 자연스럽게 막내가 되었다. 나는 조용했고, 말도 조심스러웠다. 언니들은 그런 막내를 나쁘지 않게 여겼다. 튀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친구 한 명을 더 데려왔다. 그렇게 전각은 일곱 명이 되었다. 그 무렵 리더 언니의 딸이 전각에 들러 주소록을 정리해주다가, 종이 맨 위에 제목처럼 한 줄을 써 넣었다.

칠공주.

“일곱 분이니까요.”

그 종이는 복사되어 나눠졌고, 전각의 소모임은 그렇게 이름을 갖게 되었다. 공주라기엔 모두 너무 오래 살아왔지만, 그 이름은 이상할 만큼 오래 남았다.

사람은 늘 한 명 더 데려오고 싶어지는 법이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내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여긴 짝 맞추는 데가 아니잖아.”

“사람 수가 너무 많아도 복잡해.”

누구도 직접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들은 충분히 단호했다. 전각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분명히 그어져 있었다.

그 무렵, 한 언니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유난히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움직였고, 남의 일을 잘 도왔다. 나는 그 언니를 좋게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리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503호, 자네는 그 언니 어떻게 봐?”

“좋지요. 부지런하고, 사람도 괜찮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도와주는 게 말이야… 꼭 도와주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 말은 설명 없이 끝났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커피 값, 간식 값, 잔돈 같은 것들. 크게 따지면 별일 아닌 숫자들이었다. 그래도 한 번 생긴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전각에 나가 보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언니는 여전히 먼저 움직였고,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달라진 건 나였다.

돈을 낼 때 손이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지 보게 되었고, “오늘은 내가 살게”라는 말 뒤에 누가 잔돈을 챙기는지 눈이 갔다.

“저 언니 손이 빠르네.”

누군가 농담처럼 한 말이 전각 공기 속에 잠깐 걸렸다.

그날 이후로 전각에는 말로 적히지 않은 장부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누가 뭘 가져왔는지, 누가 얼마만큼 집어 갔는지. 아무도 쓰지 않았는데, 다들 알고 있었다. 전에 같으면 “잘 챙긴다”로 끝났을 장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원래 저래”라는 말로 정리되었다.

나는 어느 쪽 편도 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게 되었다. 이 전각에서 제일 어려운 건 나누는 것도, 챙기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아무 편도 들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일이었다.

그 언니가 전각에 늦게 나왔던 날, 이미 자리는 다 차 있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불렀을 텐데, 그날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언니는 마루 끝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장부에 줄이 하나 더 그어졌구나.

그해 겨울 초입, 내가 자리를 비웠다. 허리 시술을 받았고, 생각보다 회복이 더뎠다. 병원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고, 한 번은 중환자실에까지 갔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전각의 언니들은 직접 전화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이 부담이 될까 봐서였다. 대신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밥은 좀 드시고?”

내가 빠진 전각은 묘하게 헐거웠다고 했다. 늘 가운데에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고, 차를 따라도 과자를 꺼내도 내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봄이 와서, 내가 다시 전각에 나갔을 때 언니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내주고 따뜻한 차를 앞에 놓았다.

그때부터 나는 가장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언니들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할게.”

“너는 앉아 있어.”

뭐라도 생기면 전각에서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내 집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친언니도 이렇게는 안 해줘요.”

그래도 마음은 자꾸 무거워졌다.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먹을 것뿐이었다. 김장철이 막 지난 참이라, 고춧가루 포대를 꺼냈다. 이틀에 한 번씩 마늘을 다지고 찹쌀풀을 쑤었다. 손목이 얼얼할 만큼 저어가며 고추장을 섞었다. 부엌에 고춧가루 냄새가 진하게 배었다.

일주일 동안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언니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렸다. 누구는 매운 걸 좋아하고, 누구는 속이 약했다. 고추장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플라스틱 통을 사 와 하나씩 담았다. 뚜껑을 닫을 때마다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날 오후, 나는 지팡이를 짚고 복도를 나섰다.

“이게 뭐야?”

“고추장이에요. 언니들 생각나서.”

언니들은 타박을 하면서도 통을 받는 손은 야무지게 뚜껑을 눌렀다. 그날 밤부터 전화가 이어졌다. 맛있다,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괜히 한 번 더 잔소리가 붙었다.

“다음엔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나와.”

창문을 열자 전각이 내려다보였다. 내일 오후가 되면, 또 누군가는 먼저 나와 있을 것이다. 이유는 늘 간단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을 내 모습을 잠깐 떠올렸다.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참 잘 늙고 있는 거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