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이동

단편소설11

by 최지윤

“저 여자, 이름이 뭐예요?”

“경서요.”

강수는 모임 자리에서 물었다. 가볍게 웃으며 대답한 사람 뒤로 경서가 앉아 있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맑은 피부, 큰 눈. 그는 두세 번 흘끗 보고는 시선을 거뒀다.


‘피곤해질 타입이네. 저런 여자는.’


모임 내내 경서는 특이하게 밝았다. 누구에게나 고르게 인사했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강수는 그 ‘균형감’이 불편했다. 너무 정확해 보였다


.“다음에 또 봐요.”


경서가 웃으며 손을 흔들 때에도, 그는 짧게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다.연말 파티. 경서의 친구가 하는 카페였다.


‘오늘은 얼굴이나 기억해두자.’


그런 마음으로 음료를 마시던 강수는,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떠드는 걸 들었다.

“경서야, 너도 해봐!”

“무슨 걸요?”


“메이크오버 게임이요. 안경 한 번 벗어봐.”


경서는 잠시 망설였다가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정리받고, 화장이 끝나자 주변에서 탄성이 터졌다.


“와… 몰랐네.”

“진짜 예쁘다.”

.강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다. 낯선데, 익숙해.’


그날 이후 그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반가웠어요.”


답장은 늦게 왔다.


“저도요.”


짧았고, 단단했다.몇 번의 대화 끝에 그는 솔직하게 물었다.

“혹시,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주말엔 일 있어요.”

“그럼 다음 주?”

“…보죠.”


그 한마디에 그는 며칠을 떠돌았다


.“이 근처 괜찮은 커피집 알아요?”

“있죠. 제가 자주 가는 곳으로 가요.”


약속날, 그녀가 먼저 방향을 정했다.강수는 원래 이런 패턴을 싫어했다. 하지만 그날은 자연스러웠다. 아니, 그렇게 느끼기로 했다


.“요즘 읽는 책 있어요?”

“몇 권 있어요.”

“추천 좀 해줘요.”


“읽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있어야죠.”


그 대답에 그는 잠시 웃었다


. ‘벽이 있구나.’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그 벽이 더 궁금해졌다.만남이 쌓이면서 흐름은 달라졌다


.“오늘은 내가 늦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기다릴 필요 없어요.

”경서는 늘 단정했다. 감정의 선이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강수는 점점 변했다.

“오늘은 어디 갈까요?”

“글쎄요, 배고파요.”

“그럼 저번에 말한 그 식당?”

“거기 좋아요.”

그가 먼저 묻고, 그녀가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었다.어느 날, 연락이 없었다.

이틀째였다. 강수는 경서가 자주 간다는 카페 근처에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늘은 오려나.’

‘아니지, 너무 티난다.’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뒤, 경서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강수는 묻지 못했다.


“무엇을 그렇게까지요?”

대신 웃어 넘겼다.



그날 밤, 그는 아파트 불 꺼진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연애는 이어졌다. 밖에서 보면 평범했다

.“이건 어때요?”

“괜찮네요.”

“괜찮네요가 다예요?”

“다른 말이 필요해요?”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예전엔 확신으로 설득하던 말들이, 이제는 확인으로 끝났다.

‘경서가 불편해하진 않겠지.’

그가 모든 기준을 그 한 문장으로 정리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겨울 아침, 경서는 안경을 쓰며 말했다.


“춥네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뭐가요?”

“그냥, 요즘요.”


경서는 잠시 그를 보다가 말했다.

“괜찮아요. 강수 씨가 있잖아요.”강수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이상한 환기가 일었다.

그녀가 기준이 된 순간, 그는 어딘가로 옮겨져 있었다.경서는 문을 나섰다.

강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가야 할 기준이 없는 사람.

그는 그 말이 스스로에게 가장 어울린다는 걸, 아주 늦게 알았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