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12
민영
요즘 나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나이가 들었는데도 집시처럼 산다. 어디에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약속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필요할 때만 연결된다. 길 위에서, 카페에서, 작은 모임에서 그들은 늘 가볍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자유로워진 것 같다가도, 금세 그 반대의 기분이 든다. 나는 그들의 삶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흉내 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늘 내 앞에 있지만, 완전히 건너갈 수 있는 다리는 아니다.
나는 내 선택으로 살아왔다고 말해왔다. 결혼하지 않았고, 집을 소유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오래 속하지 않았다. 그 선택들이 나를 규정하지 않게 하려고 애써왔다. 그런데도 가족의 말 한마디, 나이에 대한 질문 하나에 도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민서
언니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일은 습관이 됐다. 여행지의 하늘, 고양이, 아무 계획 없어 보이는 오후.
‘언니는 자유롭고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나는 다시 통장을 연다. 집을 얻기 위한 숫자들, 결혼을 위한 계획표. 안정을위한 목표들은 늘 나를 바쁘게 만든다.
사람들은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언니와 비교하며 나를 칭한하시곤 한다. 계획이 있고, 미래가 보인다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끔은 내가 계속 나중으로 미뤄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의 나는 늘 준비 중이다.
민영
부모의 집을 정리하던 날, 동생과 마주 앉아 서류를 분류했다. 오래된 물건과 쓰지 않는 물건들이 섞여 있었다. 침묵은 익숙했지만 얇았다. 언제든 깨질 수 있을 것처럼.
“요즘은 어때?”
동생이 먼저 물었다.
“그냥 지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양이 사료 봉지를 접었다.우리 둘은 삶의 가치관이 서로 달랐지만 동물을 좋아하는것만큼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소한 동작인데도 숨이 차올랐다. 차이점이라면 나는 고양이를 키웠고 동생은 강아지를 키운다는거.
민서
“언니는 자유롭겠다.”
말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쩌면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언니의 삶이 내 선택을 덜 답답하게 만들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민영
자유롭다는 말은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기도했지만 동시에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자유롭다는 게… 아무도 간섭 안 하는 대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거더라.”
말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이 말을 오랫동안 누군가에게라도 내뱉고싶어했다는것을.
민서
그 말에 서류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유가 부럽다고만 생각했지, 외롭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언니의 얼굴이 사진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잠시 후 민서는 말했다.
“나는 반대야. 다들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말해. 근데 가끔은 내가 계속 당장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룬다는 기분이 들어.”
민영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가 서로의 삶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늘 자유롭고, 동생은 늘 올바르다고.
해가 기울고 있었다. 창밖의 빛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하루는 이미 많이 지나가 있었고, 더 이상 정리할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할까.”
내가 말했다.
“그냥… 덜 오해하는 정도면.”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는지, 생각에 잠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집을 나서며 나는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길 위에서 웃던 얼굴들, 약속을 미루던 말들. 예전 같았으면 부러움이 먼저 떠올랐을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자유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돌아갈 곳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현관 앞에서 동생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서 있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