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8
1장 삼류 경석의 하루
알람은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
경석은 항상 진동 소리에 깬다. 새벽 여섯 시도되기 전에 울리는 단체 채팅 알림. 하루는 늘 그렇게 정해졌다.
♤ 오전 아홉 시. 사무실 집합.
♤ 정장 차림.
♤ 명함 챙겨라.
짧은 문장 몇 개면 충분했다.
그의 하루는 늘 남이 정해줬다.
방은 길고 좁았다. 군용 담요, 벽에 붙은 책상, 전기가 새는 전등.
창문은 있지만 바깥을 보여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발끝으로 운동화를 찾았다. 어제 먼지가 그대로 붙어 있는 신발.
이를 닦으며 거울을 봤다.
기억에 남을 구석 없는 얼굴. 코 옆 흉터 하나, 눈 밑 그늘.
“정장이면 또 구두 흉내는 내야겠네.”
구두는 없다. 검은 운동화를 걸레로 훑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그는 명함을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명함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다.
고시원 복도는 조용했다.
비슷한 부류들만 이 시간에 움직인다.
서로를 보지만 보지 않는다. 누구도 누구의 하루에 관심 없다.
밖은 겨울 끝자락이었다.
담배를 물고 첫 연기를 삼킬 때마다 그는 짧게 생각한다.
‘오늘도 살아 있네.’
그 이상은 없다.
사무실 4층은 ‘공실’로 표시되어 있다.
간판이 없다는 건,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익숙한 냄새가 맞았다. 담배, 술, 난방기, 싸구려 향수. 소파에 퍼진 형들, 벽에 기대 선 애들.
“경석이 왔냐.”
부두목이 말했다.
“커피. 아이스.”
“예.”
그는 뒤편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붓는다. 겨울이지만 아이스다. 그는 따뜻한 걸 마셔본 지 오래다.
밖에서는 두목의 목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이번 건 윗선에서도 관심이다. 대충 넘기면 우리만 다친다.”
경석은 컵을 들고 나왔다. 두목은 지도를 펴놓고 한 지점을 짚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무엇이 시작되는지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그는 그저 박스를 나르는 사람이다.
“경석아.”
“예, 형님.”
“저 박스 차에 내려라. 오늘 손님 온다.”
그가 박스를 드는 순간, 두목의 말이 들렸다.
“검사 하나가 설치는 바람에 귀찮아졌어.”
검사.
경석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귀는 뒤에 두고 몸만 움직인다.
계단을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설쳐봐야 뭐…”
말끝이 허공에서 꺾였다.
누군가를 비웃은 건데, 어쩐지 자기 같았다.
건물 앞에서 박스를 내려놓고 담배를 피웠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단체방이 아니라 개인 메시지.
*오늘 끝나고 시간 되냐.*
군대 동기 이름이었다.
한 번도 다시 연락할 줄 몰랐던 이름.
경석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오늘이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데.
위층 창문이 열렸다 닫혔다. 누군가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끝까지 빨아들였다.
사무실로 다시 올라왔을 때,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정장 차림 남자 둘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코트를 벗지 않은 채였다. 깔끔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경석이 왔냐. 인사해라.”
“예, 안녕하세요.”
한 남자가 그를 훑어봤다.
“이 친구가 심부름 잘한다는 그 친구냐.”
심부름.
정확했다.
두목이 말했다.
“오늘은 바쁠 거다.”
그 말속에는 평소와 다른 무게가 있었다.
경석은 그때는 몰랐다.
오늘 자신이 나를 나르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처음으로 남이 정해준 하루가 아니라
자기 선택으로 끝나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