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8
3장 김좌평의 그림자
문을 닫기 전에, 경석은 한 번 더 안을 돌아봤다.
나가라는 말은 못 들었지만, 들어오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는 자리였다
. “…그러니까, 이번 건 장난 아니다, 이 말입니다 형님.”
부두목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경석은 손잡이를 쥔 채, 살짝만 문을 남겨 두었다
. “김좌평 그 XX를 이번에 못 넣으면, 앞으로도 못 넣습니다.”
김좌평. 이름 하나에, 손가락 힘이 잠깐 빠졌다.
문이 덜컥거릴 뻔해서, 그는 급히 다시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 “윗선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까.”
두목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 “예. 그년이 들고 있는 게 결정타랍니다. 그게 법정까지 가야 끝난다고.”
그년.
누군지 모르는 여자 하나와, 이름만 들어도 속이 뒤틀리는 남자 하나. 김좌평. 경석은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이름이었다. 몇 해 전, 그가 공장에 다닐 때였다.
야간조 한 명이 손가락을 기계에 말려 들어갔다.
안전장치도 없던 라인이었다.
“사람이 잘못한 거지, 기계가 잘못했냐.”
그때 라인장이 했던 말도 기억났다.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속, 웃고 있는 남자 얼굴도.
김좌평. 그 공장은 그 일 나고 몇 달 뒤에 이름을 바꾸고, 다시 몇 달 뒤엔 아예 사라졌다.
뉴스에서는 “노사 협의 끝에 원만한 합의”라고 떠들었다.
원만하게 잘린 건 사람 손뿐이었다. 그 뒤로 뉴스에 같은 이름이 여러 번 떠올랐다.
기업인, 사회공헌, 기부, 인재상,
그런 단어들 옆에.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고, 댓글에는 “그래도 일자리 만든 건 사실”이라는 말이 붙었다. 경석은 그럴 때마다 화면을 끝까지 봤다.
끄지 못해서 본 게 아니라, 끄고 싶었는데 손이 안 나가서 본 거였다.
“김좌평은 이번에 못 넣으면 평생 못 넣는답니다, 형님.”
부두목 목소리가 다시 현재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그년을 우리가 지켜야 된다는 거고.”
“검사를 우리가 지킨다니, 세상 말세지 뭐.”
누군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웃을 일 아닙니다. 그년 죽거나 다치면, 우리 윗선도 같이 깨진다면서요.”
“그러니까 살아서 법정까지 가야 된다고, 그 말 아니냐.”
두목이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경석은 그제야 손잡이를 돌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닫는 순간, 안쪽 소리가 칼로 자른 것처럼 똑 끊겼다. 복도는 다시 조용했다.
길고 좁은 복도 끝, 출입문 쪽에서 겨울 공기가 배어 들어오는 냄새만 희미하게 났다.
김좌평.
검사.
법정.
그 단어들이 서로 상관없는 퍼즐 조각처럼, 아직은 따로따로 머릿속에 흩어져 있었다. 그날 밤, 사무실 공기는 아침과 또 달랐다.
TV는 꺼져 있었고, 테이블 위 술병도 치워져 있었다.
대신 서류뭉치와 지도, 출입증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경석아.”
부두목이 손가락으로 그를 불렀다.
경석은 습관대로
“예, 형님”
하고 다가갔다.
“오늘 밤 일이 하나 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어디 들렀다가 사람 하나 모시고 올 거야.”
“예.”
“이름은 묻지 마. 어디 가서 누구라고 말도 하지도 마. 그냥, 같이 있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석은 살짝 웃었다.
“설마… 검사님 같은 겁니까.”
부두목이 피식 웃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웃지 않았다. 잠깐, 눈만 가늘어졌다.
“그래.”
“예?”
"검사야.”
부두목이 담배를 턱으로 가리켰다.
필 거면 피우고, 아니면 말고.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검사.”
우리가.
지켜야 된다.
검사.
세 단어가 한 줄에 붙으니까, 농담 같았다
“왜… 우리 가요.”
“너는 그거 알 필요 없다.”
부두목이 말을 잘랐다
. “너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네가 늘 하던 거.”
늘 하던 거.
심부름, 박스, 물, 쓰레기.
“전과 없지?”
“예.”
“집은?”
“고시원요.”
부두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적당하다.”
무슨 기준에 좋고 적당한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차는 낡은 검은색 승합차였다.
뒷좌석에는 사람 둘이 타 있었고, 경석은 조수석에 앉았다. 운전하는 형이 말했다.
“가서 내려주면, 거기서부터는 네가 모시는 거다.”
“예.”
“헛소리하지 말고, 전화 오면 바로 받아라. 끊지 말고.”
“예.”
창밖 도시 불빛이 조금씩 밀려나고, 어두운 도로가 길게 늘어졌다.
가로등 사이사이, 허공이 더 많았다. 도착한 곳은, 외곽 쪽 허름한 모텔이었다.
간판 두 글자 네 글자가 다 떨어져 나가, 정확한 이름이 뭔지도 모를 정도였다.
“위에서 정한 데니까, 너는 그냥 신경 쓰지 마라.”
부두목이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