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동승자 4

단편소설 18

by 최지윤

4장. 보호의 밤

3층 끝방.

문이 열렸을 때, 방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정장 치마 대신 검은 바지를 입고,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고 있었다.

머리는 대충 묶어 올린 흔적이었고, 소매는 몇 번 말아 올려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가 흩어져 있었고, 벽 쪽으로는 작은 가방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여자는 고개만 들고 그들을 쳐다봤다.


“왔습니까.”


부두목이 먼저 인사했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였다.


“네.”


여자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 “오늘부터 이 친구가 같이 있을 겁니다.”

부두목이 경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심부름 잘하고, 말 안 새는 놈입니다.”

여자의 시선이 경석을 훑었다.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

. “그러시군요.


감탄도, 의심도 아닌, 그냥 확인 정도의 어조였다.


“인사해라.”


“예. 안녕하십니까.”


경석은 어설픈 허리 숙임을 했다.

여자는 손을 내밀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총은 없죠?”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예?”

질문에 놀라 반문했다

그러자


"총.”


여자가 반복했다.


“저 그런 건… 모르겠습니다.”


경석이 얼버무리자, 부두목이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런 거 안 쓸 거고, 써야 할 일도 없게 만들 거니까.”


여자는 부두목을 한 번 더 바라봤다가,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문단속 잘하시고요.”


그게 끝이었다. 부두목과 다른 놈들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여검사와 경석, 둘만 남았다.


“불 꺼도 되겠습니까.”


경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튼부터 치시죠.”


경석은 창문 쪽으로 가서 커튼을 잡아당겼다.

낡은 레일이 끼익 소리를 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틀, 문손잡이, 비상구 방향을 차례로 살폈다.


총 대신 눈으로 거리와 방향을 재는 사람 같았다. 경석 눈에는, 그냥 불안한 사람처럼 보였다.


“뭐 드실 거 있으십니까.”


“괜찮아요.”


짧은 대답. 지금까지 모셔온 사람들 중에, 이렇게 말수가 적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많이 했다. 자기 자랑, 자기 억울함, 자기 핑계. 이 여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부두목이었다.


“어때.”


"예, 별일 없습니다.”


“창밖에 차 몇 대 서 있냐.”


경석은 커튼 틈을 살짝 들추어봤다.

주차장, 가로등 아래, 모텔 앞 편의점 앞

. “예… 우리 차, 그리고 흰색 승용차 한 대, 검은 SUV 한 대 있습니다.”

“흰색은 아까부터 있었고, 검은 놈은 언제 왔는지 기억나냐.”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어. 괜히 나돌아 다니지 말고, 방 안에만 붙어 있어라.”

“예.”


전화를 끊고 돌아보니, 여검사가 그를 보고 있었다

.

“몇 대였습니까.”


“차요?”


"네.”


“우리 차, 하나 더, 편의점 앞…”


그는 중간에 말을 멈췄다


. “아까는 없던 차가 있죠.”


여검사가 대신 정리했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있어요.”


여자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 “아까부터.


“설마, 그냥 손님일 수도…”


“두 명. 둘 다 남자. 한 명은 계속 폰 보고, 한 명은 담배만 피우고.”


그녀가 창밖을 본 시간과 횟수는, 경석이 본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뜻이었다. 새벽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느려졌다.

벽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저기… 잠깐 내려가 봐도 되겠습니까.”


경석이 물었다.


“어디요.”


“그냥…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겠습니다.”


여검사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오래는 말고요.”


"예.”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아무도 몰래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앞 가로등 아래, 검은 SUV가 서 있었다.

차 안에는 남자 둘.


한 명은 진짜로 폰을 보고 있었고, 한 명은 입에 담배를 문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경석은 시선을 피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첫 모금이 목을 긁고 지나갔다.‘여기서 죽으면, 나는 뭐가 되나.’ 생각은 이상하게 그 문장부터 시작됐다. 뉴스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검사 피습, 혹은 검사 피격, 그런 자막.


큰 글자로 검사 이름이 나오고, 그 밑에 작은 글자로 “동승자 1명 사망” 정도가 붙어 있는 화면. 동승자.


남성 30대.

신원 미상


. “X 같네.”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고시원 방도 떠올랐다.

군용 담요, 땀 냄새 밴 베개, 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매캐한 공기.


사람이 죽으면 그 방은 어떻게 될까. 주인아줌마가 문 따고 들어와, 담요를 한 번 털고, 시트만 갈고, 가격표를 다시 붙여놓겠지.


다음 달에는 다른 누가 군용 담요를 턱까지 끌어올리고 잘 거다. 여기서 죽으면, 그 방도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검사 이름이 뉴스에 나오고, 김좌평 이름이 다시 댓글에 떠돌고,


자기 이름은 어디에도 안 남는다.'개죽음'. 머릿속에 그 단어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김좌평 그 XX를 이번에 못 넣으면, 앞으로도 못 넣습니다.”부두목 목소리였다.

복도 문틈 너머, 담배 냄새 속에서 들리던 그 목소리.

“그년 손에 든 게 결정타랍니다. 그게 법정까지 가야 끝난다고.”

그년.

위층 방, 테이블 위 서류들을 정리하던 여자.


“김좌평…”


경석은 입 안에서 그 이름을 한 번 굴렸다. 공장.

기계.

잘린 손가락.

웃는 뉴스 화면.


기부, 상, 포상, 박수 소리.

“그 새끼는…”

담배 연기가 콧속을 타고 올라갔다. “한 번쯤은 걸려야 되는 거 아닌가.”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는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지, 자신도 잘 몰랐다. SUV 안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훑어봤다.

마치 “넌 누구 편이냐”라고 묻는 눈 같았다. 여기서 그냥 돌아서, 도로 쪽으로 걸어 나가면 된다.

편의점을 지나, 주차장을 벗어나, 큰길까지 나가면 택시 한 대는 잡히겠지.


고시원까지 가는 길도, 버스 시간표도, 다 안다


. “여기서 도망가면, 나는 산다.”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가 말했다. “근데, 그 새끼도 같이 사는 거네.”

김좌평.

어디선가 또 웃고 있을 얼굴.

또 다른 공장, 또 다른 야간조, 또 다른 손가락. 이건 정의감도 아니고, 의리도 아니고, 대의 같은 건 더더욱 아니다.


그냥, 최소한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X발.”경석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한 번 세게 밟았다.


꽁초에서 불꽃이 튀었다 사라졌다. SUV 안 남자가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경석은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을, 일부러 무시했다. 계단을 올라가 층수를 하나씩 올릴 때마다,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3층 끝방 앞에 서자, 문 아래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손잡이를 잡기 전, 잠깐 멈췄다. 도망갈 수 있는 길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면, 아까와 똑같은 길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는 문을 밀었다.

“늦으셨네요.”

여검사가 말했다

. “예.

경석은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이 닫혔다.

복도 소리가 끊겼다. 차, SUV, 가로등, 담배 피우던 남자들, 고시원 방, 뉴스 화면, 김좌평.

모든 게 한꺼번에 문 밖으로 밀려 나가는 것 같았다. 방 안에는 여검사와, 군용 담요 대신 허름한 침대, 오래된 전기스탠드, 그리고 경석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삼류였다.

다만 그날 밤만큼은, 삼류가 도망칠 수 있었던 길을 스스로 막아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고시원 공용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다가, 화면 아래로 흘러가는 자막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여검사 피습… 동승자 1명 사망.’

앵커는 여검사의 이름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 옆, 더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붙어 있었다.


남성 30대, 신원 파악 중.’


군용 담요가 깔려 있던 방은 그 주 주말에 새로 도배가 됐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