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신아르케작가님의 '시적언어로서 은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이디어('은유'라는 글 소재)를 받아서 예전에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서 도서를 소개합니다.-
삶으로서의 은유(C. 레이코프/M. 존슨 지음)
전통적인 철학적 관점에서 언어의 주요 기능은 직시적, 설명적 기능이었고,
예를 들어
"이것은 사과이다"(직시적 정의)
그리고
"사과란,
나무에서 자라는 과일로, 일반적으로 둥글고 껍질은 붉거나 노란색·녹색을 띠며, 속은 달콤하거나 새콤하고 과육이 육즙이 풍부한 식용 가능한 과일이다."(설명적 정의)
그래서 은유는 언어 철학의 주변부에 머물렀었다. 왜냐하면 은유는 참, 거짓을 가를 수 있는 명제의 형태가 아닌 비명제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분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삶으로서 은유》의 저자 레이코프와 존슨이 학계에 등장(1980)하면서 은유는 언어 철학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은유는 언어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이다. We live by metaphors."
다시 말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을 조직하며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은유적 구조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주장이다.
즉, 사람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몸을 통해 경험한 구체적 세계를 바탕으로 사고한다. 이때 구체적 영역을 이용해 추상적 영역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로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이다.
"개념적 은유"는 인간이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몸으로 경험 가능한 구체적인 영역을 빌려와 생각하는 인지적 구조를 말한다.
즉, 은유는 단순한 언어 표현의 기교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 개념을 구성하는 틀이다. 쉬운 예로
"시간은 돈이다"
라는 은유를 통해 우리는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돈에 은유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와 같은 표현을 함으로써 시간에대한 개념을 구성하고 사고한다.
시간은 실제로 돈처럼 지갑에 넣어 둘 수도, 은행에 예치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는 시간을 돈과 같은 경제체계의 사고구조로 인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시간의 사용방식이 우리의 사회 행동을 결정한다.
이렇게 레이코프와 존슨은 인간의 사고 구조로서 은유를 바라봄으로써 사실은 직시적 정의나 설명적 정의가 언어의 본질이 아니라 은유와 함께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 주고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위 그림은 오리로도 토끼로도 보인다 오리로 볼 때와 토끼로볼 때의 우리 머리 안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