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된장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는 낯익은 일상

2026. 02. 17.

by 산이

풋풋한 싱그러움이 살아 있는 젊음이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낡고 바랜 것보다 새것이 주는 신선함이야 당연한 것이다. 금방 나온 새것에 다가가는 것은 호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인지 몰라서 무섭고, 때 탈까 두렵다. 그래서 새것에 다가가는 것은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오래되어 빛이 바랜 것보다는 새것을 갖고 싶어 한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주는 희소가치 때문에 새것을 선호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여 새것을 얻기 위해 새것을 갖고, 만들고, 또 찾으려고 애를 쓰면서 새것을 좋아한다.

일상은 늘 새것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생소한 것보다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낯익은 것이 편안하고 좋다. 그건 왜 그럴까? 도전하는 것보다 몸에 길들여진 것에서 얻는 마음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입학시즌이 가까워지고 있다. 낯선 환경이 싫어 학교 가지 않으려 떼쓰는 아이들 심정을 우리는 잘 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을 맞으며 어색함에 힘들어한다. 그런데 입장이 바뀐 조금 오래 그곳에 머문 사람들은 새내기가 온다며 신선하다고 좋아라 즐겁게 맞이한다. 시간이 지나 익숙하면 이렇게 좋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래 묵으니 진해져서 좋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첫 경험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땅을 밟을 때, 새하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남길 때 누구나 가슴 한 곳에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젖어 설레어한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 경험을! 하지만 우리는 낯선 길의 초행에서 경험하는 황당함을 잊지 못한다. 특히 밤에 차로 낯선 곳에 갈 때는 어둠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두세 번 다녀본 익숙한 길은 어유도 생기고 지루하지도 않고 주변을 살피며 감상도 할 수 있어 좋다. 경험이 주는 마음의 안식이 참으로 크다. 어릴 적 혀끝으로 느낀 맛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도 묵은 장맛이 진국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낯익은 일상이 지루한 것이 아니고 묵은 된장처럼 진한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일상의 낯익은 것들은 자연과 닮았다. 시공간의 어느 지점에 머물면서 순간순간을 맞이하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그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며 산다. 환경에 의해 나의 일상적 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삶에 많은 부분이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또 수정하면서 살아간다. 반복된 일상으로 익숙한 것에 친숙한 반응을 보이고 또 다양한 선택지에서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 비추어 선택하는 경향을 가진다. 자연에서 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환경이 같거나 유사하면 할수록 식물의 종이 씨앗 발아의 확률을 높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많은 종자가 살아남게 되어 군락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공간의 제약 속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도전보다는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또 이전에 학습한 경험, 즉 사회화에 따라 선택적 친화로 일상의 결정과 실천의 행위를 하며,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다양한 정서를 느끼고, 또 감정 표현을 하고, 나아가 마음의 즐거움, 행복, 사랑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 자연과 닮아 가는 삶을 산다고 하면 좋아하고 편안해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 밥이 그렇고, 김치가 그렇다. 일상에서 매번 접하지만 질리지 않고 먹고 또 먹는 것이 밥이요, 김치이다. 어쩌다 해외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더 그리워지는 음식이기도 하다. 간장, 된장, 고추장과 같은 발효음식은 묵어야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몇십 년씩 묵은 씨간장은 대대로 이어지고, 또 함부로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매일 먹는 장맛처럼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일상은 낯익어 익숙한 것의 투성이이다. 너무 익숙하고, 주변에 가까이 있고, 또 반복되어서 싫증이 나고 무료하다고 한다. 하지만 낯익은 것이니, 미리 예측이 가능하고 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고 즐길 수 있게 된다. 멀리 사는 친척보다 일상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 낫다는 것도 낯익은 사이니 그런 것이다. 오래 머물러서 일상을 함께 나눈 사람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다. 묵은 장맛처럼 오랜 세월을 함께 나눈 일상의 낯익은 사람의 친절은 소소한 미소로, 또 사소하나 잦은 소통으로 홀로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진정한 배려, 행복의 마음으로 삶을 오래 이어가게 한다. 묵은 장맛이 깊고 진한 풍미로 오래 입안에 남아 있듯이 오랜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일상을 공유한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깊은 정을 남긴다.

깊은 맛을 전해주는 묵은 된장, 씨간장이 사라지고 골동품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간장, 된장도 사서 먹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묵은 장맛 보기가 너무나 어려운 사회를 살고 있다. 이렇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일상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더 많다. 매일 만나는 사람도 익숙한 사람보다 일회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익명성 속에 살고 있다. 낯익고 친숙한 일상이라 말하기엔 신뢰가 무너진, 나만 외롭게 살아가는 일상이라 하는 것이 보다 더 합당하다. 슬프지만 이것이 현실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묵은 장맛처럼 깊은 맛이 있는 낯익은 일상을 찾는 것도 속 깊은 정을 나누는 마음의 지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상은 상대적으로 친숙한 사람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은은하고 잔잔하지만, 깊은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장이여야 한다는 뜻에서 묵은 장맛 같은 낯익은 일상을 그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아침을 맞이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구름 낀 날이든, 맑게 갠 날이든 상관없이 아침을 맞는다. 다만 그들의 젊고, 늙음에 따라 다른 스케줄의 일상을 누리고, 또 펼치겠지만 말이다. 살아온 연륜에 따라 낯익은 일상도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결도 다르다. 많이 살았다고 진한 맛이 우러나는 일상을 사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도 관심을 잃지 않고 배려하고 관찰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가 낯익은 것에 묻어 있는 새로운 것을 보게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본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듣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익숙한 것, 낯익은 것에 길들여진 탓이다. 낯익어 친숙한 것으로 말미암아 편견에 노출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낯익음이 오래 지속되어 묵고 묵은 상태로 푹 익은 장맛처럼 깊이 있는 삶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일상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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