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07.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 나서 세수하며 손을 씻는다. 내 손이 깨끗해지는 대신에 더러워진 물을 본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만졌다. 아무리 잡아도 잡히지 않는다. 세면대에 담긴 물은 눈에 들어오는데 나의 손에는 물이 쥐어지지 않는다. 형체가 있으나, 그 모양을 알 수가 없다. 아니 너무나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진짜를 모르겠다. 물동이 물도 물이요, 세면대의 물도 물이고, 컵 속의 물도 물이니 크기도 모양도 잴 수 없는 물이 가진 천의 얼굴을 본다.
물의 얼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도 천의 얼굴을 가졌다. 어제의 일상과 그제의 일상이 같은 듯 다르고, 오늘도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맞이해서 마무리할지 알 수 없다. 일상은 시공간의 틀 속에 짜인 스케줄로 그 윤곽을 잡아 가지만, 매 순간 맞이하는 마음과 정서, 생각, 감정 등에 따라 그 디테일의 차이로 인해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일상에서 만나는 슬픔, 아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기쁨, 즐거움, 재미 등은 소소하게 순간순간 찾아와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준다. 형체가 있어도 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물처럼 일상은 사람마다 순간순간에 어떻게 맞이하나에 따라 다양한 기분을 선보이며 천의 얼굴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천의 얼굴이 겹치고 겹쳐져서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으로, 한평생 일궈오는 삶의 모습으로 일관된다.
싱싱 웅웅 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 손님이 찾아온 줄 안다. 바람은 얼굴을 숨기고 소리만 윙윙 거린다. 예전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집집마다 집뒤안에 굴뚝이 한두 개씩이 있었다. 굴뚝에 연기가 나면, 굶지는 않구나 생각했고, 군불 지펴 아랫목이 따뜻하겠네 하며 안심하기도 했다. 굴뚝 연기를 보고 동네 사람들의 밤새 안녕을 살폈다. 뿐만 아니라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바람 손님의 화난 정도를 확인하고 옷매무시를 살펴 입고 바깥출입을 했다. 일상에서 연기는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신호였기에,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굴뚝의 연기 모습으로 얻은 것이다. 연기가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바람의 존재를 느낀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은 일상에서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그때가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지 하고 깨닫게 되는 시간, 세월과 같은 존재이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시간은 아무 느낌 없이 보내다가 연기가 나니 비로소 바람이 부네 하는 것처럼 때가 지나니 비로소 그때 좀 더 잘할걸 하고 후회한다.
바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도 의식하기 쉽지 않다. 일상의 시간,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 순간에 뒤돌아 보면, 저만치 나의 삶을 뒤로 보내고 나서 비로소 주름 하나, 머리카락 하나, 그리고 나이테 하나를 더 하고 그 존재를 드러낸다. 연기처럼, 나뭇가지처럼 바람의 마음을 있는 대로 흔들어 일깨우듯이 일상의 시간, 세월도 나의 삶 속에 깃든 마음을 깨운다. 추억과 기억 속에 잠든 사랑, 연민, 행복, 감동 등 따뜻한 감성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한다. 연기가 깨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쌓이는 나이테 속에 꼭꼭 숨어버린 나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과 사랑을 현재의 일상에서 마음으로 느끼는 삶을 생각한다. 바람은 나의 생존을 결정하는 원소인 산소를 품고 있듯이, 유한한 나의 생애는 나의 마음을 현재의 삶에 머물게 하는 영원히 연속된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일상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유한의 존재인 내가 없어도 일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삶의 주체인 내가 없는 일상은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무의미할 뿐이다. 나의 일상이, 너의 일상이 서로서로 겹치고 쌓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고, 또 그 사회의 역사로 이어지기에 나의 일상도 비록 티끌만 할지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의 일상에 있는 아주 작은, 소소한 즐거움이 반복되고 쌓여서 나의 일생에 행복으로 채워지고, 그것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나 개인의 일상도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고 일상을 함부로 소홀하게 보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고, 또 잡을 수 없고, 모양이 없을 만큼 너무나 부드러운 물이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만인이 가지는 일상의 시간도, 특히 나에게 허용된 시간도 나만의 것으로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낭비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일상은 바람처럼 왔다가 물처럼 그냥 흘러만 갈 수 있다.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 행복, 아주 작은 감동이라도 건지려면, 나의 마음이 항상 일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찬바람이 이는 오늘! 나의 귀밑 머릿결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일상의 시간도 함께 멈춤 없이 흐르고 있다. 나의 의식에는 과거의 일들이 추억이 되어 빛이 바랜 채 다가와서 그때는 참 즐거웠지 하고 속삭인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흐름이 끊긴 듯 조용한 강물은 내일도 다시 와 함께 하자며 은빛 구슬을 굴리고, 바람은 바람 대로 그저 일상의 삶이 조금은 굴곡진 것임을 알려 준다. 일상의 고뇌는 고뇌 대로 그냥 두고, 소소한 보람과 행복은 그저 만끽하고 살라고 한다. 천의 얼굴로 다가오는 물처럼, 소리 없이 도처에 머무는 바람처럼 무한히 연속되는 일상의 시간, 세월 속에 유한한 나의 삶에 아기자기한 감성을 깃들인 참된 마음을 채운다. 일상에 늘 참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며, 작은 것에도 소홀함이 없는 삶으로 즐거움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