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의식주로 다시 깨어난다. 체면과 실리?

2026. 02.01.

by 산이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고, 먹기 위한 준비로 하루의 일상이 시작된다. 하루의 끝은 숙면을 위해 잠을 청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잠에서 깨어나 식사하고 일터로 가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잠에 드는 것이 간추려진 하루 일상의 모습이다. 먹고 자는 것이 편해야 마음도 안정된다고 흔히 말한다. 잘 먹고 잘 자는 안락한 주거를 위해,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각자의 위치에서 생존을 위해 일을 한다. 일터로 가는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거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취향에 맞는 옷을 입는다. 옷을 잘 입는 것도 생존에 필요한 자원 획득에 유리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상의 시작과 기본은 의식주를 위한 활동으로 채워진다고 할 수 있다. 의식주를 통해 즐거움, 쾌락, 행복, 만족 등 삶이 가지는 희로애락의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또 잃기도 하고 나아가 그로 인한 감정소모로 동고동락하는 일상을 한평생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일상의 의식주는 행복한 삶의 기본이고 필수이지만, 그것이 갖추어졌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즉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대추 하나 먹고 이를 쑤시며 배가 부르다는 가난한 선비의 청빈한 생활을 떠올리면 일상에서 식, 먹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다. 즉 음식을 먹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지만, 그렇다고 동시에 일상적 삶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 중 하나인 행복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의식주라고 하나, 중국 사람들은 식의주라 한다. 체면과 실리 중에서 우리는 이미지와 관련된 얼굴을 중요시하는 체면 문화를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관상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비치는 이미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데 잘 입는 옷, 의관이 작용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돈 많은 중국의 부자는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먹는 것, 산해진미, 혀로 느끼는 맛의 향연을 중요시한다. 이렇게 일상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인 의식주에 대한 가치도 사회 문화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가진다.

생존을 위해 먹는 행위, 몸을 보호하고 이쁘게 보이도록 하는 옷을 입는 행위, 사적인 생활을 보호하고 유지해 주는 삶의 공간인 집! 이 세 가지는 일상의 기본이고 필수라서 사람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즉 가난한 자는 의식주가 전부라서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지면 부자가 된 듯 즐거워한다. 또 행복의 많은 것도 여기에 의존하면서 의식주의 질보다는 양을 기준으로 만족을 얻는다. 반면에 부자는 의식주의 질을 생각하고 자신의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위치를 의식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선택한다. 맛을 즐기고, 비싼 브랜드를 선택하고, 뷰가 있는 위치의 공간을 찾아 일상의 삶을 우아하게 사는 것을 더 가치롭게 생각한다. 일상의 의식주는 이렇게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기도 하고, 같은 문화에서도 개인이 점하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상이한 모습으로 소비되는 일상을 반영하여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은 의식주를 통해 깨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연출하며 마감한다.

체면을 생각해서 배고픔을 참을 것인가, 아니면 실리를 추구해서 당장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게걸스럽게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흔한 일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왜 힘들게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 바로 의식주를 잘 해결해서 걱정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음식 획득을 위해 일을 하고, 또 누군가는 타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일을 한다. 일상은 이렇게 각자 서로를 위해 의식주를 교환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채위진 공간이다. 우리는 잘 먹고, 먹는 것을 즐기고, 맛을 느끼는 혀의 향연을 통해 행복을 나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면서 먹는 즐거움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라고. 쓰고 달고 시고 싼 맛의 향연을 통해 인생의 참 맛도, 그 묘미도 함께 즐긴다. 그래서 그런가? 인생의 맛도 달고 시고 쓰다고. 또 고진감래라 하지 않던가? 먹는 즐거움에 삶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 덕분에 요즘 셰프들이 최고의 세상 나들이, 먹방을 비롯한 각종 예능 방송의 출연, 유튜버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유가 있을 때, 망설임 없이 맛집 찾아 떠나는 여행을 즐기고, 진한 풍미를 즐기려 직접 농장을 찾고,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를 즐기려 오마카세 식당을 찾으며 행복에 젖는다.

의생활은 어떤가? 우리가 태초에 옷을 입는다는 것은 원래 몸을 추위와 같은 환경이나 상처가 생기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생기는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옷을 입었고, 이제는 더 나아가 옷을 통해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개성과 이미지를 표현하고, 또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아 자신을 돋보이게 할 목적으로 패션의 취향을 선택하는 방향 전환을 했다. 패션감각이 뛰어나 옷을 잘 입어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잘 입어야 자신의 자존감도 올라가고 만족감이 커져서 일상이 활기차게 펼쳐진다. 옷이 날개라는 표현이나, 옷이 때깔을 바꾼다는 표현이 다 이를 대변하는 좋은 예이다. 옛말에 동냥도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나 현재나 우리는 일상에서 여전히 의복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행복함을 맛보고, 그렇게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배산임수를 찾아 집을 짓는다. 사회 초년생이 결혼하기 위해 아파트를 마련하는 목표를 세운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라 이제는 꿈꿀 수 없는 현실이 되었지만 말이다. 집이 장만되면 이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주거의 기본이 주택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일터에서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집이다. 집이 있으면 부자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집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집에도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산을 등지고 내가 흐르는 양지바른 곳이 아니고 전망이 좋은 즉 뷰가 좋고, 인문환경이 편리한 곳이다. 집은 그냥 일터에서 돌아와 잠자는 곳이 아니고 가족의 생활이 편리하고, 특히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 있는 곳이라고 알려진 상징적인 위치에 있어야 대접받는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사적인 일상, 즉 편히 쉬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과 오손도손 대화하며 행복을 누리는 공간이라 삶이 오롯이 영그는 생생한 현장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도 이제는 삶의 현장이라는 의미보다 재산이 되고 사회적 위치를 상승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어 일상의 참 살이를 하는 사적 공간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일상은 의식주에서 깨어난다. 우리는 의식주를 통해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일상의 참살이를 한다. 그런데 의식주와 관련한 음식, 의복, 집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본질적 의미가 퇴색하고 부차적 의미가 커졌다. 우리는 의식주를 대할 때, 체면을 살필 것인가 아니면 실리를 챙길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자신의 여건에 맞게 체면과 실리를 함께 쫓는 선택으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균형이 중요함을 알지만, 현실은 늘 선택의 고민을 하게 한다.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처럼 우리는 늘 망설인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는데, 생존을 위한 밥이 이제는 맛의 향연으로 인간본성을 바꾸고 있다. 행복을 자극하는 식사, 체면과 취향이 어우러진 패션, 재충전의 휴식을 위한 주거 공간 등 생존의 기본을 넘어서는 과한 의식주를 추구하는 일상의 모습에서 우리는 체면과 실리의 균형, 양과 질을 함께 고려하는 문화를 생각하며 고민에 잠긴다. 일상은 의식주로 깨어나고, 의식주를 통해 우리의 삶은 행복 속으로 든다.

나는 오늘도 이 추운 겨울에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고 나의 이미지를 살리는 옷을 입고서, 뷰 좋은 맛집에서 고소하고 향긋한 풍미의 커피를 즐기고 나서 거리를 활보하다 전망 트인 야경 화려한 집으로 돌아와 안락한 침실에서 꿀잠에 든다. 내일도 행복의 나날이 이어질 것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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