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4.
매일 결혼하고 매일 이혼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재혼, 삼혼이 흉이었던 과거 사회와는 다르게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한번 갔다가 온 것을 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사귐도 깊이를 더하는 정보다 쉽게 쉽게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즉 만남이 빈번하고 또 쉽게 헤어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의 삶에서 형성하는 관계가 전인격적이기보다 일회적이고 또 파편화되어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경향이 짙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일상화된다. 이것은 내면적 소통을 어렵게 만들어 신뢰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한다. 신뢰 상실의 사회는 불확실성, 불확정성 등과 연결되고 사람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게 된다. 고로 친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막상 알고 보면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공허함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친구는 많은데, 믿을 만한 친구가 없다. 마음으로 믿음을 주었는데, 돈 떼먹고 날라 버리는 친구 덕에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는 사례를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이것은 친함을 팔아 신뢰를 무너뜨리고 우정을 갈아먹는 현상이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일상의 삶이 삭막하다고 느끼고 나아가 피나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세상을 등지고 하직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것은 일상의 복잡성과 익명성에 기인한 우리의 삶이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충실한 관계를 허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을 다 바치는 깊은 관계보다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관계가 복잡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덜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얇은 정을 주고받는 관계를 선호하고, 또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장이 시공간인데, 이 시공간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동의 장이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고, 공간 환경의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서 눈만 뜨면 새로운 환경이 나타나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변화 속도와 환경의 변화 속도의 차이로 말미암아 일상의 적응 장애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공간의 빠른 변화와 변화 속도 차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변화에 대한 적응 장해, 생존의 어려움을 강제하는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일상의 시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다면 안정적인 일상생활이 영위되겠지만, 일상은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에 있고 우리는 변화에 대한 부적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주, 반복적으로 교제하지만, 그 관계가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만남을 지속하는 특성을 갖는다. 인간관계는 반복되면 될수록 친함의 강도는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뢰가 없는 가장된 채 남아 있는 친함, 친숙함으로 속 깊은 마음의 교류는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만나면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은연중에 가식적 친함을 표현하게 되고 이런 행위의 반복으로 친함이 믿음을, 또 신뢰를 가장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측면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 만나고 함께 삶을 나누고 있어서 친숙한 줄 알았는데 낯선 사람이더라.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가? 사실 알고 보면 나를 만났던 상대방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다만 표현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을 뿐이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는 나 자신도 매 순간 믿지 못하겠는데, 남을 어찌 믿니라고 흔히 말한다. 이러한 것들이 신뢰가 무너진 사회라고 단정할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아직 사회는 살만하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친한 사람에게서 낯섦을 경험하며 외로워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낯선 사람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환대를 받으며 고마워하기도 한다. 익명이지만 함께 같은 공간에서 동시간 대에 일상을 만나다 보니 이것 또한 인연이라고 친절을 베풀고 서로서로 공감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다시 일상을 함께 영위하는 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족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극단적인 표현으로 우리 시대에 가족이 존재하는가? 반문하고 싶다. 일인 가족이라는 표현은 가족의 정의에 맞지 않은 용어지만 우리는 현재 쓰고 있다. 일인 가족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무늬만 가족인 경우를 많이 본다. 또 가족으로 함께 함, 가족애, 운명 등과 어울렸던 가족관계는 이제 점점 더 엷어졌든지, 아니면 아예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신뢰가 무너지고, 사생활이란 이유로 서로 간섭보다는 독립적인 관계로 존중해 주는 이른바 정이 없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핵가족 형태가 보편적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핵가족도 더 파편화되어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 일인 가족을 형성하고, 자녀를 독립시킨 후 부부만 남은 가족도 있고, 또 홀로 사는 장년, 노년의 일인 가족 등으로 쪼개지고 있다. 가족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도, 서로 일상 삶의 스타일이 달라서 소통부재를 경험하고 사는데, 또 더 나아가 신뢰가 무너지는 해체된 관계의 가족으로 유지되는 경우는 더욱 정을 상실한 상태를 보일 뿐이다. 아울러 일인 가족으로 쪼개져 따로따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가족의 경우, 관계가 친하지만 낯선 소통으로 신뢰가 상실되는 것이야 말해서 뭐 하겠는가?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족에서도 이제는 만남이나 소통이 소원해지고 믿음과 신뢰를 전제로 한 심리적 지원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일상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친함 속의 낯섦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소위 웃고픈 뒷맛을 지울 수 없다.
일상에서 일차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대상에는 가족뿐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을 공유한, 이른바 학연, 지연과 같은 연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꾸밈없이 민낯을 보여주며 서로 우정을 나누고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경험을 나누었기에 신뢰하며 연을 맺어 왔는데, 이를 이용해서 일상의 금전적 이익을 착취하고, 급기야 마음의 상처를 남기며 배신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생겨난다.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바쁜 일상생활로 인해 친밀하고 전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는 일상 환경으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친구는 많으나, 친밀하고 믿음이 가는 지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일상에는 수많은 지인, 친구가 있지만 나는, 혹은 우리는 누구나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친한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낯선 사람으로 다가온다.
하루의 절반을 함께 보내는 직장은 어떤가? 상사도, 동료도 함께 동고동락하지만, 떠나는 그날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된다. 물론 당장 낯선 사람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언니, 누나 하면서 살갑게 지내던 관심과 친함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식어가기 마련이다. 매일매일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며 상냥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고 서로 협력하지만, 마음으로 정을 나누고 소통하기는 어렵다. 동료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사치인지 모르겠다. 직장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처지인데 말이다. 경쟁관계라 할지라도 일상에서 우리는 늘 함께 하는 동료이기에 최소한 애정을 공유하고, 빈번한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친함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직장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낯섦을 경험하는 것은 외로움을 더 크게 한다. 일상의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근함과 신뢰가 사라져 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친한 사람에게서 갑자기 느끼게 되는 생소하고 낯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급속한 변화 속에 어제까지 친근했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고 낯선 사람으로 다가오는 모습에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거의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마음으로 교류하고, 신뢰하며 삶을 살아간다. 자주, 빈번하게 만나고 소통하기에 정을 나누고 친근하게 인연을 형성하고 배려와 사랑으로 살아간다. 아무리 일상생활이 힘들어도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이 친한 사람들이 있어 살아갈 힘을 얻고 살아간다. 이제는 이런 심리적 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각자 독립된 개체로서 가장되고, 의도된 친함 속에 낯선 모습도 함께 존재하는 일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