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처럼 부드럽게 다가오는 일상의 소소함

2026. 03. 05.

by 산이

홍매화가 붉게 익어가는 날! 찬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부드러운 햇살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실내 생활에 익숙한 몸이 포근한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움직인다. 시간을 내어 나들이 가고 싶을 지경이다. 며칠 전부터 통도사 경내에 홍매화가 만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마음이 먼저 닿아 눈 감으면 홍매화가 아른거린다. 남쪽으로부터 오는 봄이 꽃을 타고 왔는지 매화도, 생강나무도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고 웃고 있어 사람의 발길을 잡는다. 나도 함께 동참하고 싶다.

일상에서 만나는 계절은 늘 생각한 것보다 빨리 찾아왔다가 가는 것 같다. 춥다고 웅크리다 보니, 겨울은 점점 멀리 소리 소문 없이 가고, 붉은 애기동백이 참 아름답다 할 즈음에 매화가 하얀 눈 속에 꽃망울을 터트린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노오란 생각나무 꽃이 푸른 잎보다 먼저 와서 웃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여기저기 봄맞이 꽃 이야기로 활기를 얻는다. 사방 곳곳에 햇살이 넘쳐나지 않은 곳이 없다. 햇살이 스며드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을 즈음, 양지 녘의 자투리 땅에 연약한 새싹이 돋아나 파란 얼굴로 반긴다. 아직은 추운지 아주 약한 바람에도 파르르 떨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니 햇살 스며든 틈새가 더욱 새록 밝게 빛난다.

통도사를 다녀왔다. 아니 절에 간 것이 아니다. 홍매화 피었다기에 봄꽃 영접하러 갔다. 부처님 형상이 없는 절! 통도사에 홍매화 더불어 능수매화도 보았다.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가지에 하얀 매화꽃이 따뜻한 햇살을 맞이한다. 꽃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봄맞이 왔는가? 아니면 꽃을 보러 왔는가? 모여든 사람들 틈새로 공작새가 화려한 깃털을 자랑한다. 스타를 만난 듯 찰칵찰칵 사진 찍기 여념 없는 사람들! 이들을 끌고 다니는 공작새! 참 재밌는 광경을 보았다. 누가 웃으라 말하지 않아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었다. 그래서인가? 천년에 한번 필까 말까 하는 전설의 꽃, 우담바라도 피었다. 불자도, 일반인도 사진에 담으려 애쓰고 진기해 입이 벌어진다. 나도 보았다. 우담바라!

나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마음에 담으려고 한다. 눈으로 꽃을 즐기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을 마음에 담는다. 오래 음미하면서 간직하려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찰칵하며 영상을 남기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왜 나는 저들과 다르지? 인생 컷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왜 나에게는 생겨나지 않지? 반문해 본다. 사진보다는 마음에 새기려고 안간힘을 쏟는 나는 천천히 사물을 관조하며 걷기를 좋아한다. 세세히 관찰하기도 하지만, 주마간산하는 것도 너무 좋다. 가끔 빨리 걸어야 건강에 좋다고 채근당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담바라도 천년에 한번 필까 말까 한데, 속세에 사는 우리가 뭐 그리 빨리 살려고 하는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다 그게 그것일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콩쇠골! 참 촌스럽지만 정감이 느껴진다. 통도사 갔던 날, 점심 먹은 곳의 상호다. 이름만 봐도 무얼 잘하는 집인지 짐작이 간다. 주차장 초입부터 입맛 돋우는 시골 냄새가 진하게 다가온다. 청국장순두부와 들깨순두부 정식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 안의 손님들이 주고받는 세상살이를 어깨너머로 들었다. 불장 주식에 돈 번 이야기며, 중동에서 터진 전쟁으로 불안해진 세계정세며,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추억 이야기 등등이다. 시장기 덜어줄 음식이 나왔다. 코를 자극하는 곰팡내의 청국장 맛이 입을 즐겁게 한다. 아! 이 익숙한 고향 맛을 어찌 잊으랴? 일상에서 즐기고 싶은 이 행복을! 나는 지금 잊을 수 없다. 청국장에 부들부들 연한 두부를 넣어 끓인 청국장순두부에 밥 한 그릇이 만원이라! 가성비와 맛을 겸비한 최고의 성찬이다. 맛과 정을 함께 먹은 콩쇠골 청국장순두부는 꾀 오래 마음에 머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 일상은 참 소소하다. 바람 없는 들판에 넓게 퍼진 봄의 햇살처럼 나른하게 하는 단조로운 곳이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고 숨도 멎은 고요의 들판인 것 같다. 하지만 봄의 아지랑이 타고 땅의 기운이 솟고, 푸른 싹이 돋고, 또 통도사의 홍매화를 피우고, 그래서 그곳의 일상에서 사람들은 인생 컷을 남기며 즐기고 있다. 이른 봄의 햇살처럼 부드럽게 다가와 보이지 않은 곳까지 스며드는 것과 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도 아주 작은 소소한 것까지 소홀함 없이 보듬어 안아 즐거움을 얻는다. 아파트 화단에 핀 노란 산수유꽃 속에 아직 체 영글 기미도 보이지 않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상상하며 유유를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생각하며 통도사에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퇴근시간의 교통혼잡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하루가 햇살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감싸 안고 포근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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