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함을 찾아서 5

은행 잎이 물들다.

by 산이

퀴퀴한 내음이 코 끝을 자극한다. 무심코 밟은 은행 열매가 그 존재를 알린다. 도시의 가로에 등처럼 우뚝 서 있는, 그래서 가로수로 흔한 것이 은행나무이다. 고약한 냄새로 인해 때때로 시민들에게 밉상 받기도 하지만, 늦은 가을 노오랗게 물든 모습에 감탄을 자아내기에 만추의 선물이기도 하다. 노랑노랑 부채가 수없이 많이 많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참으로 복스럽고 탑스럽다. 코를 찡긋하며 찌푸렸던 얼굴은 다 어디로 갔는지? 노란 단풍에 취해 환한 미소로, 가는 세월도, 일상의 스트레스도 잊고 마냥 즐겁다. 어제의 근심과 이런저런 아픔은 사라지고 환하게 그리고 노오란 희망과 행복이 다가온다. 이 가을! 저 멀리는 아니더라도 나도 단풍 나들이에 합류하며 희희낙락 즐거움을 만끽한다.

유년시절! 학교 울타리의 가장자리에는 으레 나란히 서 있는 은행나무를 기억한다. 뙤약볕 작열하는 여름이 서서히 물러날 즈음부터 틈날 때마다 연초록 은행 알을 주웠었다. 유독 은행이 열리는 나무만 매년 열리고 혹은 해거름 하기도 하지만, 암수가 다르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암나무에만 은행이 열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손에 똥냄새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지주머니 불룩하게 주워와 손, 발로 외피를 벗겼던 추억이 새록새록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른다. 아궁이에 펑 소리가 나고 파편이 티어도 구워진 은행 알의 알싸하고 구수한 그 맛이 참 일품이었다. 입안엔 벌써 침이 고인다. 농경사회에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 시대의 60대 장년 세대만이 가지는 소소한 기억이다. 은행 알을 주워서 불에 구워 먹는 추억은 그들만의 잊힌 전유물이다.

바람이 분다.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아직 겨울이 아닌데 겨울처럼 춥다. 노란 부채 모양의 은행잎이 허공으로 솟아, 날고 있다. 누가 누가 더 높이 오르나 내기라도 하듯이 높이, 또 멀리 날아가 세상 나들이 한다. 바람은 내가 단풍 나들이 왔는지 은행잎이 세상 나들이 하는지 혼돈으로 몰고 있다. 아니 어쩌면 둘이 서로 만나 만추의 아름다움에 취해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노란 은행잎이 일상의 평화로 마음을 다독일 때, 한 걸음 두 걸음 겨울은 다가오고, 또 한 해의 아쉬움에 소소한 미소를 날린다. 나도 허공을 날고 싶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발은 폭신폭신 부드러운 양탄자를 밟고 선 기분이다. 낙엽이 주는 선물인가? 매일의 일상에서 세상을 딛고 서서 온몸의 중력을 감내하고 있는 소중한 나의 발이 잠시나마 편안하라고. 하루에 만보를 걷고, 또 이만보를 걸어도 나의 다른 기관은 건강하라 하면서, 그로 인해 고생하는 나의 발이 하는 수고는 사소한 듯이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낙엽 쌓인 오솔길을 걸으면, 나의 발에게 주는 최고의 보약이 쌓인 낙엽이 주는 푹신함이다. 더는 가지에 붙어 있을 수 없어, 힘에 겨워 수명을 다했기에 가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구는 노란 은행잎! 산책길을 멈추고 한 움큼 노란 꽃잎을 잡은 듯이 허공으로 뿌린다. 하늘엔 노랑나비가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가을이란 계절에 색이 있다면 아마 노란색일 거다. 가을 하면 떠올리는 꽃! 국화다. 보라, 하양, 노랑 등 다양한 색깔의 국화가 있지만 노란 국화가 먼저 떠오르듯, 저무는 가을! 겨울 초입에 만나는 만추의 단풍은 은행나무 노란 빛깔의 단풍이다. 찬바람과 더불어 은행 나뭇잎이 노랗게 물드고 있다. 만추가 물들고 있다. 만추의 계절에 노란 은행 잎이 좋다. 도시의 가로는 노랑 풍선이 등불에 빛나고 있다.


2025. 11. 21.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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