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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통째로 도난당했다 (1)

미국 신고식

by 개일

실리콘밸리에 이주한 지 2년도 안 되었을 때, 내 차를 도난당했었다. 차 안의 귀중품이 털린 게 아니라 차가 통째로 사라진 경험. 아마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실리콘밸리나 미국 어디에서든 차 안에 귀중품을 두고 내리지 않는 건 기본이다. 정말 필요해서 차에 두어야 할 때는 웬만하면 트렁크에 두고, 장기간 비워둘 때는 트렁크에 두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아주 잠깐 사이에도, 심지어 주유 중 계산하러 잠깐 자리를 비워도 귀중품 도난 사건이 흔하게 일어나니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창문을 살짝 내려놓고 차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일부러 보여주기도 한다. 그 정도로 차 안에 비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방범 수단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건 귀중품 도난 수준을 넘어서 차 자체가 도난당한 사건이었다. 흔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물론 절대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당시 나는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잘 외출하지 않는 편이었다. 회사는 월요일과 금요일이 재택근무다 보니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차를 주차해두고 사용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차는 지하 전용 주차 자리가 있어서 항상 그 자리에 세워두곤 했다.


그리고 어느 화요일, 평소처럼 회사를 가려고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내 차가 자리에 없었다.


순간 멍해졌다. ‘어라, 뭐지? 내가 잘못 세웠나? 마지막으로 운전한 게 언제지?’ 최근 며칠을 하나하나 기억해 보며 곱씹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차를 썼는지, 언제 들어왔는지, 분명히 내 자리에 주차했던 것까지 떠올리며 지금 차가 없어진 건 내 실수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바보같이 처음 든 생각은 “오, 오늘 회사 안 가도 되겠다”였다. 그날따라 회사 가기가 싫었는지 참 철 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슬랙 팀 채널에 “Personal emergency”라고 거창하게 적어놓고 오늘 못 간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 나는 아파트 매니저를 찾아가 차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주차장을 전체 확인해보고 내 차가 정말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경찰 신고까지 해주었다. 차 도난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매니저가 차근차근 도와줘서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됐다.


한 시간 후 경찰이 와서 이것저것 묻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언제 잃어버렸냐길래 “금요일에서 월요일 사이 언젠가요..”라고 했더니 경찰이 깜짝 놀랐더라. 왜 그리 오랫동안 동안 차를 안 썼냐고.


그날만큼은 내 집순이 성향을 후회했다. 왜 나는 주말에 좀 더 나가 놀지 않았을까. 장이라도 보러 나갔으면 찾을 가능성이 높았을 텐데.


경찰 말로는, 요즘 현대와 기아차가 특히 많이 도난당한다고 했다. 도난이 너무 많아 현대차에서 무료로 도난방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메일을 받고도 그냥 무시했었다. 설마 내 차가 도난당하겠어 싶어서. 내 귀차니즘 성향으로 정비소 가기를 미루다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닌가 싶어, 차가 도난당한 게 내 잘못도 크게 한 몫 한 것 같았다.


경찰은 찾을 확률은 높지 않지만, 나중에 찾으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잃어버리자마자 하루 안에 신고했으면 그래도 확률이 절반 정도는 되는데, 3일 동안 언제 도난당했는지 모르는 상태라 더 낮아졌다며. 아무튼 찾으면 No Caller ID로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KakaoTalk_Photo_2023-12-02-21-15-22_003.jpeg?type=w966 차가 사라진 내 주차 공간에 떨어진 차 파편.


나중에 내 주차 자리를 다시 가보니 저렇게 파편이 떨어져 있었다. 예전 현대차 모델은 USB 하나만 있으면 시동이 가능하다나. 틱톡에 ‘현대차 훔치는 법’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다는데, 그런 영상은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금지해야 되는 거 아닌가.


차가 있어서 회사에서는 조금 먼 곳으로 이사 왔는데, 차가 사라지니 처음엔 렌트카를 쓰다가 나중엔 회사 셔틀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셔틀을 타면 회사와 집 왕복이 빠르면 3시간 30분, 느리면 4시간. 하루에 4시간이 그냥 사라지니 그걸 계속 할 순 없겠더라. 회사만 다녀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회사 매니저에게 얘기했더니 소문이 퍼져서 여기저기서 뭔 일이 났는지 물어보러 왔다. 차가 털린 경우는 아주 흔해도, 차 도난은 현대/기아차 주인 말고는 잘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니. 소문이 퍼지고 나중에 보니 다른 선배도 예전에 차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분은 현대차가 아니라, 그냥 차 키를 차에 두고 안 잠그고 내렸다가 도난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전체 보상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차를 돌려받고 싶었다.


그리고 5주 후.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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