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회사를 떠난 지 몇 달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갔다.
아침에 일어나도 심장이 뛰지 않았고,
메신저 알림이 울려도 몸이 움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점점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 사람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들어 놓았던 내 마음의 상처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정말 많은 것들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1. 폭력은 ‘큰 일’이 아니라 ‘작은 말’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고성을 지른 적도,
물리적으로 위협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그 사람이 조용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들이었다.
“당신은 기본기가 약해요.”
“내가 없으면 어렵죠?”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요.”
그 말들은
겉으로는 피드백이나 조언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내 내면을 잠식하는 칼날이었다.
상처는
칼처럼 날카로운 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실은 이렇게 조용히 균열을 내는 한 줄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2. 침묵은 공범이라는 것
그가 나를 몰아세우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동료들.
그들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그들도 피해자였다는 것을.
그들 역시 그 사람을 두려워했고
그들에게도 침묵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것을.
폭력은
가해자 한 명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침묵의 구조, 두려움의 생태계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고 나니,
그들에게 쌓아두었던 감정도
조금씩 풀렸다.
3. 가스라이팅의 진짜 피해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것
그때 나는
그 사람의 평가가 곧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 사람의 말투에 맞춰 내 생각을 바꾸고,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내 행동을 조절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흐려졌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내가 다시 나답게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잃었던 건
단순히 ‘자존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전체였다는 것을.
가스라이팅은
상처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사람은 그 기술에 아주 능숙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4. 떠나야만 보이는 진실들이 있다는 것
회사 안에서는
그 모든 일이 ‘그저 업무’처럼 보였다.
지적처럼, 코칭처럼, 피드백처럼.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오자
그 일들이 모두
어떤 패턴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느꼈던 불안과 무기력은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든 환경의 문제였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은
누구도 건강하게 버틸 수 없다는 것.
그걸 인정하자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가슴이 아주 조금,
정말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5. 나를 지키는 일은 결국 나만 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람은
내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막으려 했고
떠난 후에도
내가 흔들리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를 지키는 결정은
나 스스로 내려야 했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 벗어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회복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허락해야만 시작되는 것임을.
이 많은 것들을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는 너무 늦은 것 같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그 질문에는
지금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이제
다시는 그 사람 같은 세계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내 삶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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