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키워줄 사람이야”
그 사람의 말투는 늘 다정했다.
문제는, 그 다정함이 ‘필요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입사한 지 열흘쯤 지나,
그 사람은 나를 회의실로 불러 조용히 앉혔다.
유난히 문을 꼭 닫은 채였다.
“요즘 적응 잘 하고 있어요?”
말끝을 길게 늘이며 묻는다.
그 질문은 ‘관심’처럼 들렸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하고 있어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진짜 잘될 사람이야.”
그 사람은 그런 말을 쉽게 했다.
그 쉬움이 문제였다.
그 사람의 ‘칭찬’은
상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기대대로 움직이게 하는 도구였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 보면 금방 알아본다니까.”
“진짜… 내가 키워주고 싶은 사람이야.”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칭찬인데도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선가 ‘빚’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순간,
상대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 고마움이 충성으로 이어지는 게
그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며칠 뒤,
회식 자리에서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 이번에 사람 잘 뽑았어요.
제가 보자마자 알았죠, 아 이 사람이다.”
웃음과 박수가 나왔다.
그 속에 묘하게 섞인 ‘소유 선언’ 같은 말투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본부장님의 사람이 된 건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며 처음으로 의문이 생겼다.
왜 저 사람의 칭찬이 이렇게 무겁지?
왜 그 말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는커녕
자꾸 나를 좁은 곳에 밀어 넣는 느낌이 들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내게 했던 칭찬들은
모두 통제를 위한 ‘계약서의 문장’이었다.
단지 나는 그걸 칭찬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