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마음은 용서를 낳는다. -에릭 호퍼
"나는 불만을 품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 보면 세상이 나를 실제보다 더 잘해 준 것 같다. 그것은 칼에 찔린 단 한 번의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술 취한 멕시코인이 내 넓적다리를 가랑이에서 무릎까지 칼로 그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막사에서 나 혼자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화를 돋웠다. 내 기억에 그때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그 멕시코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그 멕시코인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이후에 그가 감옥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말이다.
철학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정규 커리큘럼을 밟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 은퇴 후에는 철학대학원을 가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마치 그 문턱을 넘어야 철학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식으로 세상을 아는 이가 있고 몸으로 세상 이치를 깨닫는 자가 있다면
에릭호퍼는 아마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그가 쓴 글들은 더 현실적으로 깊이 와닿는 느낌이다.
그가 쓴 아포리즘 형식의 글들을 보면 어느 한 부분을 읽어도 충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가 말한 용서에 대한 구절은 '원수를 사랑하라.‘처럼 적극적인 용서라기보다는
약간은 무심한 용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당한 것에 매몰되어서 갚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인데 호퍼는 자신의 상처를 먼저 치유하고자 하고 그를 건드린 사람은 생각에서 배제를 시켰다.
그는 칼부림한 부랑자에 대해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상대가 술이 만취되어 호퍼 자신을 해한 것에 의미를 부여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나에게 부당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미워했던가?
많은 시간을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의 뇌에서 돌아다니게 놔두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이를 밀어내는 것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뇌를 속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호퍼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이미 상대를 놔주었다.
해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그가 겪은 삶의 고단함이 상대에게도 있다고 인지를 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아직도 사소한 일에 목매고 상처받는 나로서는 언젠가는 닿고 싶은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