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계절, 도망치지 않으려고요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를 선택하는 법

by 이연

감정을 다 토해내던 시절엔 억울할 때면 숨김없이 말하고, 화가 나면 울고, 스스로도 컨트롤할 수 없었던 감정들로 인해 수없이 나를 무너뜨리곤 했다.


그땐 그게 솔직함이고, 뜨겁게 사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는 문턱을 지나고 있는 지금은 알 수 있다.

모든 감정을 다 꺼내 보인다고 해서 나를 잘 지키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칠 때, 그 감정에 휩쓸리기보단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 게 나를 위한 선택일까?'

한 걸음 멈춰서 생각해 보는 힘을 배워가고 있다.


아직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기에 서툴고, 때로는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매일을 살아내는 가운데 나는 조금씩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시험 끝나면 놀러 가자!"

"야, 걔랑 걔랑 사귄대!"

"학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들 대신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같은 대화들만 오갔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를 다 맞은 듯한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예전처럼 마냥 웃는 얼굴은 아니었고, 우리는 다들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처음 나눠보는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면 나 또한 삶에 책임을 지는 고민을 시작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두가 이런 식으로 성장하겠지 싶었다.


지금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일화는

내가 오래 일했던 알바 자리에서의 일이다.

내가 맡은 부사수가 실수를 했을 때, 사장님은 소리를 지르며 누가 저지른 실수인지 찾으려고 아르바이트생들을 추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제가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드렸어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충분히 여러 번 시범을 보여줬고, 성실하게 설명도 다 했었다.

내 가르침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내 책임으로 가져갔다.


나는 3년간 일하면서 책임의 무게를 배웠다.

가끔은 책임을 피하지 않는 태도가 내 실수를 덜어주기도 했고, 사람들과의 신뢰를 쌓아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나의 책임은 모든 걸 떠안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책임이라면, 외면하지 말자. 였고, 이 기준이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내 선택의 결과를 내가 감당할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완전히 단단해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연약하다는 이유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내 몫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며,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는 중이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을 일으켜내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삶이 어지럽고 벅찰지라도 매일의 균형을 다시 잡고, 다시 나로서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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