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 낳는 사람이 아니라, 쉽게 낳을 수 없는 사람

난임 때문에, 혹은 덕분에 시작한 글

by 끄적


결혼 초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딩크라고 이름 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다.

내 컨디션이 어떻든 일이 최우선이었고, 성과가 따라오는 삶은 충분히 중독적이었다.

일하는 모든 순간이 유쾌하지 않고 이명과 두통은 늘 달고 다니는 회사생활이었지만,

일에 대한 보람은 몸과 마음의 아픔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걸 놓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이가 생기면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앞에서 나는 임신과 출산의 과업을 스스로 밀어냈다.


"나는 아기를 안 낳고 싶어."


그 말에 남편은 말없이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해서 낳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종종 우리가 선택했다고 믿은 것들이

사실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려주곤 한다.




결혼 2년 만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 소식, 달갑지 않았다.

'나의 일은? 경력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하지만 임신 증상을 몸으로 느끼며

내 뱃속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자연스레 아이와 함께 할 우리 부부의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기대와 기쁨으로 마음이 물들어갔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작별은 늘 갑작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두 번째 유산 이후 난임 병원을 찾았고

각종 검사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나는 '안 낳는 사람'이 아니라

'쉽게 낳을 수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때부터 내 삶의 언어는 바뀌기 시작했다.

일정은 나의 생리 주기에 맞춰 주사와 약 중심으로 돌아갔고

'임신이 되어야 해.' 목표를 향해 맹목적이었다.


나는 어느새 30대 여성, 유부녀, 퇴사자, 휴직자,

그리고 '고차수 난임 여성'이라는 명찰을 스스로에게 달고 있었다.


난임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괜찮은 척 출근하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앞으로의 써나갈 나의 글들은

난임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희망을 강요하거나, 긍정으로 덮어버리는 글도 아니다.


난임 때문에, 혹은 덕분에

내 삶의 속도가 달라진 한 사람이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의 변화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숨기지 않고 써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잠시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