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유산 트라우마
※ 2025년 7월 세 번째 유산을 겪은 후, 그 시점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을 작성해 두었던 글입니다.
세 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어떤 유산에서도 빠짐없이, 많이 쓰는 말이었다.
내가 뱉은 대로, 긍정적인 마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처럼 되지가 않는다.
오늘은 그냥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적어보려고 한다.
세 번째 유산을 받아들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약물을 사용한 배출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다.
오늘부로 더 이상의 출혈은 나오지 않는다.
다음 주, 병원에 가 임신의 흔적들이 깨끗하게 배출되었는지 초음파로 자궁을 확인하고 의뢰해 둔 염색체 검사를 듣고 또 한 번의 임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 또 다음 임신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인데,
세 번을 겪었는데 또 겪을까 봐 벌써 두렵다.
실제로 이 두려움은 유산을 여러 번 겪은 사람들이 자주 겪는 심리적 고통이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왜 하필이면 우리 부부에게'
'살면서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매일 아침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고 나에게 긍정 확언을 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된다."
긍정 확언 직후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자신감, 유지되면 좋으련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뒤이어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문장이 내 마음속으로 찾아든다.
'뜻대로 안 되는 게 하나 있어, 그게 임신이야.'
그 임신, 해내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게도 아기가 올까요? 다음에는 와줄까요?
임신은 노력의 영역이 아닌, 운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을 또 한 번의 고난으로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유산을 한 후 가족들이 참 많이 챙겨준다.
남편과 나의 생활에 터치 없으시던 시어머니가 나의 세 번째 유산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 연속 염소탕과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 등 먹을 것을 챙겨다 주신다.
엄마는 내가 우울증에 걸릴까 싶어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전화가 온다.
"우리 딸- 오늘은 어때? 오늘은 어떻게 보낼 거야?"
남편은 내 기분과 컨디션을 살피며 퇴근 후 저녁밥을 차리고, 내가 먹은 밥을 치우며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가족 밖에 없지 싶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기 안 바라니까, 괜찮으니까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가져.
젊으니까 천천히 자연적으로 가져도 돼."
우리 부부 스스로를 힘들게 몰아붙이지 말라는,
부담 갖지 말라는 배려의 말씀인 걸 안다. 감사하다.
그 배려의 마음 안다. 아는데,
'저는 난소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답니다.'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엄마는 나에게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 한다. 어떻게?
유산 후 그 기분 빨리 잊으라고 한다. 어떻게?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거 어떻게 하냐고.
엄마, 그거 나한텐 위로 아니야..
라고 말하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까 싶어 또 한 번 속으로 삼킨다.
그 기분, 그 상황 잊히지 않아요.
마음 편하게 먹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죠.
요즘은 친구들도, 지인들도 모두 만나기가 싫다.
내 근황을 꺼내기가 싫다.
무슨 일 있냐며 연락이 오면, 일단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거절 아닌 거절을 한다.
내가 힘드니 내 소식을 알리고 싶지도, 그들의 소식을 알고 싶지도 않다.
남편에게 이 고민을 털어놨다.
"내가 평생 친구가 될게."
고마웠다.
근데, 당신은 내 동반자이지 진짜 친구의 역할이 아니야.
고마운 마음과 달리 말은 왜 이리 비뚤게 나가는지 모르겠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바로바로 드는 생각이 냉소적으로 바뀌는 것만 같다.
지난 두 번의 유산 원인은 내 생활 전반을 괴롭히는 업무 스트레스였다며, 시험관으로 이번엔 꼭 아기 가지겠다며, 세 번째 실패는 없다며 당당하게 퇴사했는데,
결국 또 유산이었다.
이번은 일 때문이었다며 합리화할 것도 없다.
다행인가.
지난 유산들과 다르게 나를 탓하진 않는다.
나는 이번에 노력할 만큼 했단다.
이 상황이 너무 마음에 안 들뿐이다.
살면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얼마나 많겠냐만,
지금은 마음 안 드는 이 상황을 철저하게 관망하겠다.
내 잘못 아니라고. 우리 잘못 아니라고.
타이밍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유산 후 자연배출 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주일 간 집에만 있었다.
집에만 있으니 어두운 생각의 고리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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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에 잠식되는 사람이 아니다.
몸 컨디션은 돌아오고 있어 원래의 루틴대로 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단지 헬스장에서 점차 시간을 늘려가며 걷기부터 하고 있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글도 써본다.
에너지 넘치던 평소의 나대로,
긍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만을 추구하던 나로,
조금씩 돌아가겠지.
인간은 관성대로 하려고 하니까.
"익숙함의 관성에 따라 다시 내 생활로 돌아갈래."
나는 결국 내가 이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한번 나아갈 것을 안다.
나는 늘 그래왔다.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것만 기억에 남는다.
아팠던 시간은 희미해지고, 아픈 일이 생기면 처음 생긴 일인 양 또 한 번 아파한다.
삶의 과정에서 순탄함만 있지 않았고, 넘어져 아파하고 쉬어갔던 때가 있음을 이렇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