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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

인간이 땅을 길들이고 땅이 인간을 길들이다

by Henry




1만 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피부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규모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이 숫자는 문명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인간이 자연과 맺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전환점의 상징이 되어왔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1만 년이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 이전은 선사(先史)라 불리고, 그 이후는 농경·정착·문명·도시·지식·기록이 등장한 인간적 시간의 시작이다.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되었다. 그런 안정은 인간에게 정착의 가능성을 주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이어지던 불확실한 삶에서 벗어나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고고학자 빈포드는 말했다. “농경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 사건이다.”


1만 년은 인간과 자연의 권력관계가 바뀐 시간, ‘문명’이라는 개념이 출현한 시간이다.


약 1만 년 전, 인류는 큰 결정을 내린다. 떠돌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곳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기후가 조금 온화해졌고 야생 밀과 보리를 채집하기에 좋은 계절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세계의 구조를 바꾸는 시작점이 된다.


농경의 시작은 기술보다 태도의 변화였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존재가

‘기다릴 줄 아는 존재’로 변한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행위는

미래를 믿는 행위였고,

수확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을 길들이는 일이었다.


농사란

“오늘의 행동이 몇 달 뒤 나를 살린다”는 깨달음이다.

사람은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계산했고

비와 햇빛의 리듬을 읽기 시작했다.

‘때’를 아는 능력, 그것이 문명의 첫 번째 지능이었다.


1만 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인간은

정착을 배우고,

저장고를 만들고,

잔치를 하고,

공동체를 세웠다.

수확을 나누는 법을 익히면서

윤리와 규칙, 권력과 갈등도 함께 생겨났다.


농경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기술처럼 보였지만

실은 자연이 인간의 삶을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땅은 우리가 뿌린 씨앗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법, 종교라는 다른 씨앗까지 틔우기 시작했다.


1만 년 전, 인류는 땅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가 오늘 사는 도시, 국가, 경제, 가족의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해 준다.

문명은 거창한 발명이 아니라

작은 씨앗 하나를 기다릴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지질학은 1만 년을 자연 변화의 최소 단위로 바라본다.

지형이 바뀌고 해수면이 오르내리고, 대기의 조성이 변하는 데 수천 년에서 1만 년이 걸린다.

지구는 이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말했다.

“우리는 광대한 시간의 얕은 층 위에 서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이라는 얕은 지층은

불과 1만 년에 불과하다.


지구 46억 년 역사 앞에서

1만 년은 먼지보다 작은 순간이지만

한순간이 원시의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인류학자들은 1만 년을

사회·종교·언어·예술이 폭발적으로 분화된 시기로 본다.

인간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각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정착은 잉여(surplus)를 만들었고,

잉여는 계층을 만들었고,

계층은 권력을 만들었으며,

권력은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신화는 문학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1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결과다.


플라톤은 시간을 영원의 움직임이라고 보았지만,

정작 시간의 실감은 농경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생겼다.

씨 뿌리고 거두는 리듬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한 해’, ‘다음 해’, ‘지난해’를 구분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인간은 지속을 느끼는 존재다.

지속은 책임을 낳는다.”


1만 년은 인간이 ‘지속’을 인식하게 만든 시간이다.

그것은 책임을 알고, 미래를 상상하고

더 나은 삶을 설계하려는 의지를 낳았다.


문학은 1만 년을 ‘기억의 길이’로 여긴다.

기록은 문자보다 오래된 것이고

기억은 기록보다 오래된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탄생한 배경에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신화가 있었고,

신화의 씨앗은 1만 년 전 인류가 정착하며 만든

최초의 공동체 의식이었다.


문학평론가 해롤드 블룸은 말했다.

“문학은 인간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에 관한 답이다.”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적 깊이가

1만 년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1만 년을 체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 언어, 관습, 도시, 법, 종교, 예술. 이

모두가 ‘1만 년의 유산’ 위에 서 있다.


1만 년은 인간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는 긴 시간의 결과다.”

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문학은 이 시간을 통해 말한다.

우리는 모두 수천 세대가 축적한 결정체이며,

1만 년의 서사가 뿌리처럼 스며 있는 존재다.


그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지만

1만 년 전부터 인간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선택이 도시가 되었고,

문자가 되었고,

예술이 되었고,

정치가 되었고

지금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1만 년은 문명이 태어난 호흡,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변한 시간이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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