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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태양을 따라 시간을 세기 시작하다

by Henry




인간은 처음부터 시간을 세려 하지 않았다.

계절은 스스로 오고 갔고

비와 눈, 추위와 더위는 반복되었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언제’가 삶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곡식을 심는 시기, 홍수가 오는 시기,

가축을 번식시키는 시기,

모든 것이 일정한 순환을 따라 움직였다.

반복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높이,

그 빛이 가져오는 온기,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는 주기

사람들은 작은 변화를 읽으며

한 해의 길이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365일이라는 숫자는

관찰의 결과이자, 생존의 계산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범람을 기준으로 365일을 기록했고, 마야인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그들에게 1년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우주의 호흡을 재는 척도였다.


태양력을 만든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하루하루를 모아

계절, 절기, 축제가 생겼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 되었다.

삶은 예측 가능해졌고

공동체는 약속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365일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그 숫자는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한 법칙이었다.

삶은 순환이라는 원안에 들어왔고

과거와 미래는 같은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365라는 숫자를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달력의 끝에 적혀 있는 연 수(數) 정도로만 느끼지만 이 숫자는 인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삶을 조율하려 한 가장 오래된 노력의 흔적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약 365일.
인간은 이 우주적 주기를 ‘시간’이라는 언어로 번역하여 자신들의 일상을 맞추기 시작했다.
과정은 수천 년에 걸친 실험이었다. 농경의 리듬을 만들고, 축제의 날짜를 정하고,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는 일.
365는 숫자가 아니라 문명을 작동시키는 리듬이자 인간의 질서를 만들어낸 기호였다.

인문학은 이 숫자를 ‘시간의 총량’으로 보지 않는다.
365란 결국 살아 있음의 증거,
‘하루’라는 작은 단위를 인간에게 선물하며
삶을 관리하고 성찰하는 사고의 구조를 만든 숫자다.

우리는 365일 속에서 성장하고 실패하며
다시 배우고 회복하고 사랑한다.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겨울의 고요와 봄의 약동, 여름의 빛과 가을의 익어감.
365는 모든 순환을 하나의 완결된 호흡으로 묶어낸다.

또한 365는 인간에게 기대와 새로움이라는 정서를 부여했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다시 다짐하고
지난해의 실수와 상처를 다른 이름으로 덮어두며
새로운 달력에 희망을 적는다.
연초의 설렘은 결국 이 숫자가 만들어낸 문화적 퍼포먼스다.

그러나 365의 진짜 의미는 ‘긴 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모여 쌓이는 힘에 있다.
한 해를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한 작은 선택.
인문학은 이 지점에서 말한다.

“365는 거대한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숫자다.”

우리는 때로 삶을 바꾸기 위해
아주 큰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1%의 변화가
365일을 지나는 동안 놀라운 차이를 만든다.
하루 10분의 독서, 하루 한 컵의 물,
하루 한 번의 깊은 호흡처럼 작은 실천들이
삶을 단단하게 엮어낸다.

결국 365는
우리를 조급하게도 만들고
다시 담담하게도 만드는
인간과 시간의 은밀한 동맹이다.

한 해의 규모는 늘 같지만
그 안을 채우는 우리의 이야기는 매번 달라진다.
365는 숫자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문장들이며,
그 문장을 어떻게 써 내려갈지는
언제나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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