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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개밥바라기별>

기억의 용기가 우리를 다시 서게 할 때

by Henry




어떤 청춘은 이미 지나가고도 한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빛을 알게 된다. <개밥바라기별>은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자신을 밀어붙였던 시대를 돌아보며 그 시절의 흙냄새와 바람, 어둠과 희망을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회고의 서사다.


그는 기억을 곱씹는 대신 기억 속을 다시 걸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문장을 쓴다. 빛과 그늘이 동시에 스며 있는 삶의 질감을 절제된 언어로 탁월하게 포착한다. 황석영 문학의 힘은 이곳에서 나온다. 큰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도 개인의 고독과 선택을 세밀하게 기록하려는 태도, 무거운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집요함. <개밥바라기별>은 그런 그의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기원의 자리처럼 읽힌다.


소년이 성장하듯, 한 인간의 삶도 불온한 질문과 실패, 좌절과 욕망을 지나며 성숙해진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삶을 뒤흔들었던 청춘의 순간들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의 불안한 숨결을 담담히 드러낸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 시대의 압력 앞에서 흔들렸던 마음,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해지기 어려웠던 고독. 무엇도 영웅적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삶이 흐른 그대로를 기록한다. 덕분에 독자는 화려한 사건보다 인간의 내면에 남은 잔상들, 말이 되지 못한 침묵의 파편들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이 작품을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한다면 ‘회복의 기억’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사로잡히는 일이 아니라 잊고 싶던 상처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 행위다. 상처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로 다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용기. <개밥바라기별>은 그 과정을 조용히 보여준다. 어딘가 어두운 골목을 지나온 사람들만이 품는 쓸쓸함이 있지만 동시에 그런 쓸쓸함을 견디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단단한 빛도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회복의 기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던지지 않는 것, 오래 묵힌 후회와 마주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서두르지 않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실패와 단절을 품고 살아가지만 기억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음 한 걸음을 딛게 된다. 기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기도 하다.


<개밥바라기별>은 잃어버리고 미끄러졌던 청춘의 파편들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박한 순간들이 쌓여 삶이 되고 그런 삶이 지나쳐 간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였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문학은 이렇게 언제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돌아봄 속에서 조금씩 더 단단하고 따뜻한 인간이 되어간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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