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들리는 목소리
어떤 사랑은 너무 오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간다. <엄마를 부탁해>는 그런 오래된 사랑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며 우리가 얼마나 늦게 후회를 배우는 존재인지 조용히 일러준다.
신경숙은 익숙함에 묻혀 사라진 관계의 결을 세밀한 문장으로 다시 불러내는데, 문장은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서랍을 천천히 열어젖히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 소설 안에서 거대한 상징이 아니라 늘 한 발 뒤에서 온 가족의 무게를 홀로 지탱해 온 한 인간의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가 남긴 생의 자국들을 따라가며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듣지 못했던 부탁들을 뒤늦게 해석한다.
이 작품을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한다면 돌아봄이다.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오래 미뤄둔 마음의 빚과 마주 서는 일이다.
소설 속 가족들은 기억의 파편을 주워 모으며 각자의 후회와 죄책감을 드러내지만 그런 감정의 바닥에는 ‘사랑이 충분히 전해지지 못했다’는 슬픈 자각이 흐른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를 잃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거창하지 않다. 너무 익숙해 소홀해진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 오늘의 수고를 바로 오늘 고맙다고 말해주는 일, 내일로 미룰 것 같았던 마음을 지체 없이 건네는 일. 사랑은 표현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단순한 진실을 이 소설은 다시 일깨운다.
우리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에야 잃어버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고요 속에서 늦지 않았다는 듯 작고 확실한 다짐을 다시 세우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는 그런 다짐의 시작점이 된다.
서울역 지하철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가족과 함께 이동하던 중 군중 속에 휩쓸려 실종된다. 가족들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엄마를 찾지만 누구도 엄마의 삶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큰딸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리고 아들은 언제나 묵묵히 내어주기만 했던 엄마의 사랑을 새롭게 직면한다. 남편은 오랜 세월 무심히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후회하며 가족들은 각자의 시점에서 엄마가 남긴 흔적을 더듬는다.
소설은 엄마의 실종을 통해 한 가족을 지탱하던 사랑과 희생이 어떤 얼굴이었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얼마나 쉽게 당연함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엄마는 늘 곁에 있었기에 깊이 보지 못했던 존재다. 실종이라는 사건은 그런 익숙함을 뒤집고 가족의 기억 속에서 조각나 있던 엄마의 삶을 다시 이어 붙이게 만든다. 시골의 농사, 자식들을 위해 도시와 병원을 오가던 발걸음, 말 대신 행동으로 건넸던 사랑의 풍경들이 서서히 빛을 되찾는다.
신경숙은 엄마라는 존재를 신화화하지 않는다. 대신 세월과 노동에 닳은 손, 말보다 앞서 움직이던 몸짓, 누구에게도 보살핌을 요구하지 않던 침묵을 통해 정작 본인은 단 한 번도 중심에 서본 적 없는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엄마를 잃고 나서야 가족은 비로소 그런 무게를 이해한다. 잃음이 사랑을 되묻고 부재가 관계의 본질을 밝혀낸다.
이 소설이 오랫동안 독자에게 남는 이유는 우리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 미처 건네지 못한 말과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그런 침묵 속에 남겨진 감정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사람을 잃어가는 이야기이자, 한 사람을 다시 배워가는 이야기다. 배움은 늦었지만 그래서 더 아프고, 또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