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꿈의 경계를 지키는 마지막 기사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전쟁터에서 팔을 잃고
감옥에서 글을 쓰며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견디던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실패와 좌절로 가득했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 탄생한 인물은
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가장 우스우면서도
가장 숭고한 인간이었다.
그가 바로 <돈키호테>다.
돈키호테는 늙은 지주의 몸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기사 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는 낡은 갑옷과 말라비틀어진 말을 챙겨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육체는 이미 현실의 무게에 눌려 있지만
그의 마음에는 아직도
‘정의’라는 오래된 빛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그를 조롱하고
누군가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며
누군가는 그의 광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이야기의 어느 지점에서도
그를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현실만을 보는 사람이 더 현명한가,
아니면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더 인간적인가?”
풍차를 거대한 악으로 착각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지만
그 속에는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풍차와 싸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
상처 속에서 붙잡고 싶은 꿈.
그런 모든 것과 우리는 매일 겨룬다.
돈키호테의 실패는
그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실패는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그런 힘은 현실을 무너뜨리는 용기가 아니라
현실에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에 가깝다.
그의 곁에는 산초가 있다.
산초는 현실적이고, 유머로 가득하고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그와 함께 걷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한다.
하나는 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는 현실의 발로 길을 딛는다.
인간은 그런 두 가지를 모두 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세르반테스는 이 기묘한 동행을 통해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잊은 꿈의 이야기이면서
꿈을 잃은 현실을 다시 깨우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에 가까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
무언가를 위해 싸우고 싶은 열망이 남아 있다.
세르반테스는 말하고 싶었다.
비록 세상이 당신을 미쳤다고 부르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붙들고 살아가는 일은
결코 헛된 삶이 아니다.
사람은 바로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때로는 위대해진다.
돈키호테는 결국 실패한 기사였다.
하지만 그가 끝내 지켜낸 것은
승리도, 명예도, 영광도 아니다.
그가 지켜낸 것은 단 하나,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풍차는 여전히 세상 곳곳에 서 있고
우리는 때때로 풍차를 거대한 괴물처럼 느낀다.
그러나 그 앞에서
다시 한번 창을 들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세르반테스가 말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어리석음이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