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반죽
큰딸이 고요하게 위로를 건네는 은은한 마가렛 꽃 같다면, 둘째는 칙칙해진 일상에 뜻밖의 색으로 흩뿌려주는 다정한 붓질 같습니다.
특유의 발랄함과 엉뚱함으로, 때때로 가라앉은 집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곤 합니다.
하루는 식탁 전체를 하얀 밀가루 밭으로 만들어 놓고 혼자 뚝딱뚝딱 쿠키를 굽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도구들과 어지러운 식탁.
결국 저 난장판의 뒷수습은 엄마의 몫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잔소리가 먼저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레이에 담긴 쿠키를 보는 순간,
저는 그만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가족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아낸 쿠키였습니다.
아빠는 철봉에 매달려 있었고 엄마는 배 위에 부항을 잔뜩 올리고 누워있었습니다. 언니와 자기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귀여운 여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 소심한 고양이 투투의 모습도 담겨 있었지요. 고단하고 무거웠던 하루의 피로가 아이의 그 엉뚱한 재치 한 번에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쿠키 맛 또한 파는 맛이어서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냥 발랄하고 장난기 넘치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가끔은 제 마음을 찌르르 울리는 어른스러운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제가 오랜 침묵을 깨고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제 곁에서 말해주었습니다.
"엄마가 글을 쓰기 시작해서 정말 좋아요. 그동안 엄마는 너무 우리한테만 신경 쓰면서 살았잖아요."
그 다정한 한마디가 제 마음을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지만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속에만 맴도는 문장들을 삼키며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데만 집중을 했었거든요.
골방에서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알았을까요?
어느 날 들려준 이 아이의 울림이 또다시 힘이 되어 내 펜을 노래하게 했습니다.
때로는 엉뚱한 웃음으로, 때로는 속 깊은 응원으로 제 삶의 빈 곳을 다채롭게 채워주는 아이.
존재만으로도 정말 존귀한 이 아이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이 시를 선물합니다.
넌 참 다정한 화가야
얼룩지고 칙칙해진 하루 위에
신비롭고 오묘한 빛깔로 덧칠해
다시 기쁨으로 바꾸어 주잖아.
넌 참 사랑스러운 요리사야
네가 가진 달콤함과 짭짤한 지혜로
밋밋할 수 있는 일상에
행복이라는 깊은 맛을 더해주기도 하지.
넌 참 속 깊은 선생님이야
때로는 엉뚱해도 늘 진실한 네 마음,
그 순수한 사랑이
어른인 나조차 본받고 배우게 만들곤 한단다.
넌 참 따뜻한 의사야
네가 건네는 예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위로가
나의 아픔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다시 웃게끔 치료해 주니까.
넌 참 눈부신 작은 별이야
세상이 너를 필요로 하는 곳마다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반짝이며 서 있을 거란다.
나의 소중한 딸아,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이미 큰 축복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