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싹
길고 매서웠던 겨울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마침내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 정원의 고요하고 캄캄한 흙 속에 다짐의 씨앗을 묻어두고 묵묵히 기다리던 어느 날, 내게 주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날 작은 딸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네가 볼 때 온유한 사람인 것 같니?"
그러자 딸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온유한 사람은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가끔 가시 돋친 말을 하잖아요."
나의 성품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선하고 따뜻하다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내심 온유하다고 자부했었는데, 내 자녀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 비뚤어진 마음이 삐져나왔었구나. 부서지고 무너졌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날 선 채로 튀어나왔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받지 않고 팍팍한 삶을 버텨내려다 보니, 제 마음의 정원은 어느새 바짝 메말라 있었습니다. 물기 없는 마른땅에서는 여유롭고 부드러운 말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내 정당함을 변명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해 뾰족한 가시들을 세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강하고 단단해져야만 이 혹독한 계절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눈물로 가꾼 마음의 정원에서 제가 목격한 생명의 신비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의 틈을 비집고 올라와 기어이 봄을 선포하는 것은, 단단한 껍질이나 뾰족한 가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아주 작고 연약한 초록이었습니다. 마른땅을 뚫고 나온 작고 온유한 뿌리였습니다.
그 경이로운 생명력 앞에서, 저는 나를 지키려 세웠던 뾰족한 가시들을 가만히 거두어들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기어이 고개를 내미는 건
날카로운 송곳이 아니라
작고 말랑한 온유한 싹입니다.
강한 바람에 몸을 낮추고
차가운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부드러움이 어떻게 단단함을 이기는지
그 여린 초록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말들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찌르는 가시가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기어이 봄을 피워내는
낮고 온유한 싹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