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에 심은 씨앗

다짐을 심었습니다

by 더 나아가


상처 입은 제자리에서 기어이 온유함으로 이겨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나의 다짐을 비웃는 듯 또 다른 슬픈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의 열심에 속아 지쳐 울게 되는 날, 성취감으로 거뜬한 마음이 들지 않고 힘든 날, 그런 날 있잖아요.

그러다 마주친 고독이란 친구, 그 친구가 늘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을 삼키고, 흐르는 눈물을 위로 올려드리는 시간이 제겐 가장 안정된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픔이 단번에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게 쉽게 뒤집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너진 소망의 자리는 늘 존재하고, 여전히 잡초가 무성하고 돌쩌귀 가득한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 척박한 곳을 다정한 정원으로 가꾸어 내기 위해서는, 굳은 다짐을 씨앗 삼아 땅에 심고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등 뒤를 돌아보니 베란다 창을 통해 멀리서 비추는 불빛들뿐이었습니다.

유난히 조용하고 고독했습니다.

깜깜했지만 싫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고요한 고립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상처를 헤집던 날 선 소음들이 사라진 그 침묵 속에서, 내 마음은 비로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장 깊고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시끄러운 바깥이 아니라, 어둡고 고요한 땅속에서 가장 큰 생명력을 품습니다.

남들에게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고요의 시간이야말로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위대한 힘을 비축하는 눈부신 순간임을 이제는 압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싹을 틔울 수 없음을 말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도 묵묵히, 고요 속에 이 다짐의 씨앗을 남겨둡니다.

침묵 속에서 더 깊어질, 함께하시는 시간을 믿으면서요.

​고요에 심은 씨앗


​내 작은 마음의 정원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 봅니다.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그 이름 모를 씨앗이 품고 있을 시간을

나는 재촉하지 않으려 합니다.

​홀로 남겨진 고요한 시간,

뒤돌아보면 곁에 아무도 없는 듯 보여도

나는 이 고립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 침묵 속에서 마음은 더 깊이 숨을 쉬고

가장 큰 힘이 건네지는 순간임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싹의 모양을 묻지 않은 채

고요 속에 씨앗을 남겨 둡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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