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진단 - 시소
이십오 년 가을,
여든다섯의 노모이신 엄마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대장 절제 수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 무렵,
처음부터 대장암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술 전날 밤,
엄마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조용히 내년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딸 고운 고추장은 언제 담가주어야 하는지,
올해는 누구네 집 고추로 담그면 좋을지까지...
병실에 누워 계신 분의 말치고는
너무 먼 계절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저 오지않을수도 있는 내년
엄마의 몸상태를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라,
본인보다 이미 다 큰 자식의 먹거리를
먼저 떠올리시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는 아직도 더 내어주시고 싶으신가보다.
그날, 병실 밖으로 나오자
가을비가 추적추적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앞으로의 몸 상태도, 회복의 가능성도
아무것도 알 수 없던 순간에,
여전히 자식에게 무언가를 더 내어주려 하시는
엄마의 마음이 그 비 속에서 가만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 빗속에서 눈물인지 빗물인지 아무도 모르게
부끄럽지 않게 실컷 울 수 있었다.
그 울음은 슬픔이라기보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가까웠다.
처음의 통증은 대장암이 아니라
뇨로결석에서 시작되었다.
연차를 내고, 직접 시골로 내려가
엄마를 모셔 드렸을 때였다.
약은 통에 나눠 시간별로 정리해 두었지만,
추가로 드셔야 하는 진통제는 자주 놓치고 계셨다.
총기를 잃어가고 계신 엄마 앞에서 약이 섞일까
나는 안절부절하며 엄마에게 끝내 호통을 치고 말았다.
약 봉투를 들고도 한참을 서 계시다,
무엇을 하려 하셨는지 잊으신 얼굴,
말끝이 흐려지며 눈으로만 나를 찾으시던
순간들 앞에서 내 마음은 여러 번 저려 왔다.
혼자 계신 엄마를 잘 챙겨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앞서 해 나갔다.
약을 정리하고,
시간을 재촉하고,
혹시나 놓칠까
말을 앞서며
손을 먼저 뻗었다.
그런데 그 모든 행동 앞에서 엄마는 멋쩍게 웃으셨고,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끼는 마음이
언제나 다정하게 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엄마 스스로 약을 잘 챙겨 드실 수 있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져 호통치던
내 모습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그 장면은 한동안 내 일상 속에서도
자꾸 자꾸 떠올랐다.
어떤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아버지가 가시던 날,
병원에서 응급검사를 앞두고
물을 드시면 안 된다는 규칙을 나는 끝까지 지켰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시던 아버지가 물 반 컵만
달라 하셨을 때도, 나는 규칙을 넘지 못했다.
검사를 마친 뒤,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물을 마실 때면
나는 종종 그날의 죄책감을 함께 삼킨다.
나는 오랫동안 의료 현장 가까이에서
사람의 몸과 시간을 바라보는 일을 해왔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도 나는 딸이기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고, 결정을 미루지 않으려 했다.
수술 이후 항암 치료를 시도했지만,
잦은 설사와 빠른 탈장이 왔다.
엄마의 몸은 더 이상의 치료를
견디실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과 항암 이후의 시간은
나의 집과 가까운 요양원에서
보내시도록 했다. 시골로 다시 모셔 보내면
돌봄과 관리가 이전만큼 세심하게 이어지기
어렵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 돌아보면 그 걱정 역시
엄마를 위한 판단이라기보다 남편과 나,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었던
욕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워낙 깔끔하고 고우신 엄마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또렷한 분이셨고, 그래서인지
그 생활이 더 불편하셨던 것 같았다.
항암을 받으시던 시기,
엄마는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설사를 하셨다.
여든다섯의 나이에 사십 킬로그램대의 몸으로
하루 열다섯 번이 넘는 설사를 하시는 모습을
나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결정의 이유는 분명했다.
엄마가 더 이상 항암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선택 앞에서 나는 사형제 중 모진 딸이 되기로 했다.
더 버티게 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누군가에게는 포기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통을 더하지 않는 쪽이 엄마에게는
가장 인간다운 선택이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지금의 엄마는 항암을 하시던 때보다
오히려 더 평온한 하루를 사신다.
진료를 보러 나가시고,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하루의 리듬을 지키신다.
오늘은 회사에서 배달앱으로 김밥을 주문해
문 앞에 배달해 드렸다.
대단한 음식을 사 드리는 일이 아니라,
밖으로 나서기 힘들어진 엄마의 하루에
잠시라도 예전의 시간을 불러오는 일이다.
엄마 혼자서는 사러 나가기 어려운 음식을
기억 속에서 꺼내 하루 안으로 데려오는 것.
나는 그렇게 엄마의 하루에 추억의 음식을 소환한다.
남은 시간 동안 엄마 집앞에
엄마가 좋아하시는 순대도, 김밥도,
치킨도 마음껏 문 앞에 놓아드릴것이다.
어릴 적,
시소 아래에서 묵묵히 나를 받쳐 주시던
엄마처럼,
이제는 시소를 타던 엄마의 마음 앞에
저도 당신 앞에 앉겠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것 같다.
엄마가 남은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며
엄마답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곁을 내어드렸다는 사실로 괜찮아진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나쁜 딸이라 해도,
독한 딸이라 말해도,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 모든 말보다 엄마의 하루가
조금 더 편안해졌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충분히 지켜주고 있으니까.
엄마의 남은 생이 덜 아플수 있기를 기도하며
매일 매일 당신을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막내딸 하설 올림
〈시소〉는 어릴 적 딸과 노모가 된 엄마의 마음이 번갈아 오르내리는 순간을 담은 곡입니다.
서로 다른 무게로 같은 자리에 앉아 한 번도 손을 놓지 않았던 시간에 대하여...
마음결이 방끗^^ 박하설 올림.
https://youtube.com/shorts/_Crq4pQvj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