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응, 여기까지 잘 왔어
어제까지 피곤했던지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엄마로부터 소식을 물고 온 멧비둘기가
귀담이를 일으켜 세웠다.
비둘기가 전한 안담 여사의 소식은,
귀담이에게
“왜 며칠째 안부가 없냐?”
“너 엄마 무시하냐?”였다.
귀담이가 지금 어디가 아픈지.
어디 다른 강으로 출장가서 고기잡이를 하는지.
그런 건 안담 여사에겐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귀담이는 이 소식을 듣고,
이름 모를 죄책감과 엄마 걱정으로
숨 막히는 하루를 시작했다.
하늘나무는
그런 귀담이의 손을 부드러운 잎사귀로 감싸며
긴 뿌리를 이용해 숲 가장자리 바닷가로
안내했다.
밀물이 빠진 자리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작은 생명들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소라 껍데기를 둘러쓴 집게 한 마리가
몇 걸음 가다 멈추고,
또 몇 걸음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더 크고 튼튼해 보이는 빈 껍데기가 놓여 있었다.
“집게야 왜 큰 집으로 옮기지 않니?
새집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귀담이가 물었다.
역시 의심 많은 집게는 작은 더듬이를 움찔하더니
귀담이를 향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좋아 보인다고 다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단했다.
“그럼… 왜 망설이고 있어?
지금 집은 너무 비좁아 보이는데.”
집게는 천천히 껍데기 밖으로
집게발을 조금 내밀었다.
“이 집은 작지만, 지금 내 몸에 딱 맞고, 안전해요.”
“밖으로 완전히 나오면
난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요.”
“껍데기 없는 저는 그저 부드러운
살덩이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계속 그렇게 있으면
점점 더 답답해지지 않아?”
집게는 한숨처럼 모래를 흩날렸다.
“답답하죠. 하지만 옮기는 순간이 더 무서워요.”
“새집이 나를 지켜줄지,
아니면 나를 드러내는 함정이 될지
그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르잖아요.”
귀담이는 순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자리,
지금의 역할,
지금의 평판.
조금 불편해도 벗어나기 두려웠던 시간들.
“저 아이에겐 지금의 집이 그런 시간일까?”
“집게야…혹시 너,
완벽한 집을 찾고 있는 건 아니야?”
집게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맞아요. 100% 안전한 집.
실수할 틈이 없는 집.
누구도 나를 공격하지 못할 집.”
“그런 집이 있다면 난 당장 옮길 수 있을 거예요.”
귀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그랬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았지.”
“그래서…
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어.”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계획해 두었더라도 잘못된 선택이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
"내가 잡은 물고기가 혹시 멸종위기종은
아니었는지, 내가 몰라서 그랬다면
어떡하지? 라는 확인의 확인은
언제나 내 심장을 피곤에 지치게 했지."
집게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요…. 저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완벽한 집은 없다는걸.”
“조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난 계속 이 작은 집 안에서 몸만 비틀다
끝날 거라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빌려 살고 있는
이 집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걸요.”
집게는 숨을 고르듯
껍데기 가장자리에서 몸을 조금 더 내밀었다.
햇빛이 잠시 부드러운 살을 스쳤다.
그리고 다시 들어갔다.
“오늘은… 아직 아니지만 언젠가는 옮길 거예요.”
“그리고 비록 그 선택이 조금은 불편한
소라일지라도 다시 옮기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귀담이는 집게의 그런 소리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그래. 당장 아니어도 돼.”
“겁이 난다고 네가 약한 건 아니니까.”
귀담이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다짐 섞인 말로 집게를 위로해 주었다.
그때 하늘나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귀담아,
성장의 순간은 항상 ‘껍데기 밖’에서 시작돼.”
“완벽을 기다리다 보면 삶은 네가 준비되기를
끝없이 기다려 주지 않을 거야.”
“조금 불완전한 채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일 때도 있지 않을까?”
바람이 집게의 껍데기를 살짝 건드렸다.
귀담이는 가만히 속삭였다.
“응, 우리 여기까지 잘 왔어.”
“오늘은 옮기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오늘 새로운 용기를 발견했잖아.”
하지만 네가 언젠가 옮길 수 있다는걸
잊지 말자.”
집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껍데기 안에서 아주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도
아침에 멧비둘기가 물고 온 엄마 소식으로
마음 한편이 불편한 귀담이는
멧비둘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잠에 빠졌다.
“둘기야~ 가서 엄마한테 나 아직 집 옮기는 중인데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줘.”
집게는 “미완성 게”가 아닙니다.
단단한 껍질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대신
‘이사’라는 전략을 택한 존재죠.
완성되지 못한 게가 아니라 움직이며 사는 게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성장하여 보다 큰 집으로
옮기는 순간은 그야말로 생존의 극한 상황이죠.
만일 완벽한 소라를 찾아 헤매는 집게가 있다면
몸과 작은 소라 집이 분리가 안 되겠죠.
그건 곧 미련한 ‘정지’ 아닐까요?
다음 5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