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왜 나만 다 줘야 해?

(6화) 응, 여기까지 잘 왔어

by 성낙필


귀담이는 어젯밤 꿈을 꾸었다.


별빛도 숨죽인 밤.

집 옆의 작은 도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수달, 귀담이.


귀담은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며 이슬 섞인 눈을 감고 있다···.


귀담은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제발, 제가 더 잘할게요~~~

무사히, 무사히요~~~.



하늘나무는 그런 귀담이의 머리카락을

가는 가지로 쓸어주며

마음 치유 숲의 아침을 맞게 해주었다.


오늘도 아주 걸쭉한 이슬차를 한잔 마신 귀담은

하늘나무의 손짓에 따라

수줍은 햇살이 들어오는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선 하얗고 커다란 함박꽃나무 꽃이

잎자루 끝에서 맑은 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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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는

검은 개미들이 분주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꽃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잠깐!”


개미 한 마리가 멈칫했다.



“난 너에게 다 주었잖아! 잎에도, 줄기에도,
너 먹으라고 꿀까지 흘려 주었잖아!”




“그리고 너는 매일 나를 찾아왔잖아.

난 너를 절친이라 생각해서 다 준 거야.”


“그런데 넌 나한테 왜 안 그래?”



개미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듯 더듬이를 움찔했다.


“응… 맞는데…”


“나도… 네가 편해서 자주 온 것은 맞고.

나도 너를 좋아해.”


함박꽃은 서운함이 안 풀린 듯

재차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내가 준 것만큼 안주냐고?”


개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멈칫멈칫하면서도 마음속에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못 올 거 같아, 저렇게 화를 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개미는 꽃에게서 멀어지며

힘들어 보이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겨진 꽃은 분노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다 줬는데…. 나는 다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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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화가 났던 꽃이

이제는 축 늘어진 채

햇빛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꿀이 아닌 눈물이 꽃잎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귀담이가 조심스럽게 꽃에게 다가갔다.


“왜 그렇게까지 많이 줬어?”


꽃은 억울한 듯 말했다.


“나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

사랑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귀담이도 가슴이 내려앉으며 말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맞아, 나도 그랬어. 하지만 옆에서 너희들의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


“개미 친구가 다 달라고 요구한 적 있었니?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 준 건 너나 나만의 의지였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개미의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될 것도 같아. 너를 절친으로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표현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함박꽃은 울먹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그래야 나를 떠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래야 나를 선택할 줄 알았어.”


“나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거든.”



귀담이의 마음 잔에도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찼다.


“나도 그랬어.”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미리 다 주고,

더 주고, 계속 주면서…”


“속으로는 이제는 나 좀 알아주겠지,

이제는 나 좀 지켜주겠지, 기대했어.”


꽃은 천천히 귀담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두 그저 좋은 꽃으로 남고 싶었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는
다 줘도 아깝지 않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 꿀을 내가 먼저 다 흘려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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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늘나무의 넓은 잎이 함박꽃나무와 귀담이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하늘나무의 잎새 바람


“얘들아, 자연의 공생은 계약이 아니라 균형이 아닐까?”


“꿀은 선택이고, 보호는 보장되지 않아.”



“상대가 원하지 않은 선물은
때로는 짐이 되고,
기대는 계산이 되지.”




“꽃이 건강하려면 꿀을 다 흘리는 대신

뿌리를 먼저 키우면 어떨까?”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꽃은 조심스럽게 꿀을 멈추었다.

그리곤 잎을 곧게 세웠다.


개미 몇 마리가

잠시 머뭇거리다 떠나갔다.



조금 허전했지만, 꽃은 처음으로

스스로의 줄기를 느꼈다.


귀담이는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내 맘대로

다 주고 나서 나 혼자 서운해하는 수달이었구나.”


바람이 스쳤다.


하늘나무가 부드럽게 말했다.



“조금 덜 줘도 괜찮아.”
“그래야 네가 남아.”

“사랑은 최선을 다하는 것 보다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지도 몰라.”



귀담이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응, 여기까지 잘 왔어.”


하늘나무를 따라 다시 잠자리로 돌아온 귀담은

우리 엄마도 그래서 힘들게

살아오신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오늘은 꿈을 꾸지 않을 거야.


내일 아침은 힘들지 않은 나로 만나보자.”


그런 생각을 되뇌며 꿈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함박꽃나무는 주로 강원도 높은 숲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꽃이 목련처럼 크고 암술과 수술 색깔이 예술이죠.
향기가 좋은지 숲의 개미나
곤충이 많이 모입니다.
때로는 개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함박꽃의 상처도 이젠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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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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