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개미+페로몬=쉼?

(3화) 응, 여기까지 잘 왔어

by 성낙필

어젯밤은 꿈 없이 고운 잠을 잤다.


공황 숲의 여명은 노래하는 박새 소리에 녹아

귀담이의 아침을 대신해 주었다.


오랜만에 예기불안이 없는 하루를 시작한 귀담은

세수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발밑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행렬을 보았다.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짐을 지고

일렬로 걷는 개미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바빠 보였다.


59년이라는 시간을 '성실'이라는 굴집에서 살아온

귀담이에게

그 풍경은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귀담이는 개미들의 행렬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장 큰 짐을 지고 가던 개미에게 물었다.


“개미야, 너희는 왜 이렇게 바쁘니?

잠시만 짐을 내려놓고 쉬어도 좋을 텐데.”



개미는 짐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쉴 수 없어요. 불안하잖아요.”
“멈추면,,, 내가 사라질 것 같잖아요.”



개미의 말은

귀담이의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너희는 쉬는 게 오히려 힘든 일이겠네?”



귀담이의 물음에 개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맞아요. 짐이 없을 때의 고요함이

우리에겐 가장 큰 소음처럼 들리거든요.”


귀담이는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샛강을 살피던 자신의 뒷모습이

개미들의 짐 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너와 나는 비슷한 게 있구나.”

“자신이 누군지, 존재의 확인을 위해서

자꾸만 짐을 늘려가니까. 짐이 무거울수록

자신이 더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면서 말이야.”


귀담이는 측은한 눈빛으로 개미를 바라보며

한숨 섞어 말했다.





그때 갑자기

귀담이 등에서 소라 휴대폰이 무거운 진동을

전해왔다.


귀담은 늘~ 그랬듯이

즉각 받아 답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미의 지친 눈을 보며

처음으로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소라폰 뚜껑을

덮었다.


“개미야, 방금 내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았어.”



신기하네···.


내가 멈췄는데도 숲은 사라지지 않고,

바람은 여전히 내 털 사이를 지나가네.”


“너도 짐을 내려놓고 한번 멈춰볼 생각 없니?”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늘나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늘나무의 잎새 바람


"귀담아, 네가 짊어진 짐 중 대부분은 사실

네가 없어도 숲이 스스로 옮겼을 것들이야.“


개미가 짐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듯이,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너의 별을 지키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까?"



귀담이는 처음으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행렬이 아닌, 개미들이 밟고 지나가는

풀꽃의 흔들림을 보았다.


짐을 내려놓은 손은 어색했지만,

숨은 어느덧 맑은 물처럼 잔잔해져 있었다.



"응, 여기까지 잘 왔어.
오늘은 조금 멈춰있어도 괜찮아.“




어느새

공황 숲이 치유의 숲이 된 귀담이는

내일 만나게 될 친구에 대한 기대로

하늘나무의 넓고 따스한 잎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개미들이 줄을 지어 움직이는 이유는
후각에 의존하는 개미들이 페로몬을 뿌려
먹이와 집 간의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게다가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므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슬픈(?) 숙명을 갖고
태어납니다.

우리에게 페로몬은 오히려 ‘쉼’ 아닐까요?


다음 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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