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역시 여전하구나

다시 각성

by 그유정

“와- 너 여전하구나!” 이 말은 보통 좋은 의미로 쓰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러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을 때, 서로 덕담을 나누는 의미로 하는 인사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나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철이 든 사람이다. 그전까진 어찌나 철이 없었는지.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아휴, 절레절레하게 된다.


참 욕심도 많고 집착도 강했다. 어린 나이였으니 미숙했었던 거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그래도 충분히 성숙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예전의 날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예전의 철없는 나로 살아선 안되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그 세상이 말썽쟁이들의 세상으로 보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변하기 위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부터 가르치는 것처럼, 나도 인사를 잘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밝고 씩씩한 인사는 두루두루 좋아해 주셨다. 어르신들은 기특해하시고 사회에서 만난 분들은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말할까 말까 한 무거운 상황에서는 말을 아꼈다. 화가 날 땐 화를 버럭 낼까 하다가 눈을 감고 숨을 다시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깊고 어두운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되면 지우려 노력했던 여러 집착들과 욕심들이 마음 위로 떠올랐다. 10여 년 전 나와 다를 것이 없는 철없는 내가 다시 늪 위로 두둥실 올라와 버렸다.


그러면 ‘너 역시 여전하구나.’ 나는 나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역시 여전하다 ‘는 말은 나에겐 최면에서 깨우는 딱- 소리와 같다. 눈을 번쩍 뜨게 되고 정신은 각성된다. 잔인하지만 가장 마음을 문질러 쏙 파고 들어오는 말이다.


그때그때마다 각성하는 삶, 그러니까 크게 바뀔 순 없어도 끊임없이 성찰하는 삶은 그래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너 역시 여전하구나.‘ 오늘도 남몰래 읊조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시 마음을 다잡을 기회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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