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이 떨어져도 괜찮아
추운 겨울 아이들과 나는 종종 집에서 보드게임을 한다. 아이들은 슬슬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의미를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 특유의 패기 어린 승부욕이 게임 내내 조절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파이팅이 넘친다. 쉼표 없이 달려가는 아이들의 텐션이 무섭기도(?)하고 아이다워 귀엽기도 하다.
며칠 전, 첫째 아이의 방학으로 우리는 집에서 오전부터 보드게임 삼매경이었다. 훈훈한 카펫 위 우리의 선택은 바로 ‘펭귄 얼음 깨기’ 보드게임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꽤 단순하다. 서로의 압력으로 붙여놓은 얼음조각들을 조그마한 망치로 번갈아가면서 깬다. 그 위에는 귀여운 펭귄이 위태롭게 서있다. 내가 깬 얼음에 불쌍한 펭귄이 떨어지면 나는 패배이고 상대방은 승리다.
보드게임 세팅을 야무지게 하고 우리는 비장하게 게임판 앞에 앉았다. 실수 없이 돌림판을 돌려가며 순서를 정하고, 우리는 번갈아 가며 얼음조각들을 깨기 시작했다.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안타까운 규칙이 있는데, 아이라고 게임할 때 항상 봐주지는 않는 것이다. 자존심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한 첫째 아이는 눈치껏 져 주면 일부러 져 주었다고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아이라고 꼭 봐주지는 않는다는 규칙을 이번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발 아이가 이겨주길.‘ 을 속으로 외치며 얼음을 깼다. 파란색 얼음 깨기, 하얀색 얼음 깨기, 이번엔 건너뛰기! 반 이상 얼음을 깨다 보니, 이럴 수가, 미안하게도 내가 이겨버렸다.
사실 나는 이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져주었다고 아이가 화를 냈던 이유는 그만큼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엇, 엄마가 이겼다!” 태연하게 승리를 외치며 슬그머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속상하고 아쉬운 얼굴. 숨길 수 없는 슬픈 표정. 아이는 패배의 쓴맛을 맛보고 있었다. 3초간의 정적이 끝나고 아이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괜찮아. 질 수도 있지. 다시 해보자. “
와, 아이가 변했다. 원래 아이는 지면 졌다고 울기도 하고 엄청 속상해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져도 괜찮았다. 게다가 질 수도 있으니 다시 해보자는 제법 어른스러운 말까지 해주었다.
당장 3월에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는 1등과 그다음 등수, 먼저 간 친구와 뒤따라 가는 친구, 등과 같이 매일 승패가 있는 세상에 노출될 것이다. 인생에는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으면 행복이 있는 것과 같이, 승리가 있으면 패배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 세상이 주는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커갈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아리다. 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이겨보기도 하고 져보기도 하면서 단단해지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일 것이다. 졌을 때는 온 마음 내주어 위로해 주고 이겼을 때는 두 손 꼭 잡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첫째 아이의 성장이 참 기특하다. 쑥쑥 크는 아이들처럼 올 한해 나도 깊어지고 넓어지는 사람이 되어가야겠다.